8. 무념 바닷가 바위 끝 암자 하나 담장 너머 능소화 두어 송이 열린 법당 안 빙긋 웃음짓는 부처님 실눈 한밤 달은 밝은데 댓닢 스치는 한 줄기 바람소리 ☆. 버스는 남도(南道)의 시골 자락을 구불구불 휘돌아 간다. 그 자락마다 드문드문 인적 끊긴 집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고 독(孤獨)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 있다. 흔들거리는 내 몸도 시골길이 된다. 숲 속 돌다리 건너 계단을 오른 언덕 위에 작은 암자가 있다. 속세의 먼지를 떨쳐버리듯 해탈문(解脫門)을 들어선다. 시간이 멈춘 듯한 한여름의 산사(山寺)는 한적하고 고즈넉하다. 잠시나마 미혹(迷惑)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문 열린 법당에는 석조미륵불 하나만 오롯이 가부좌를 하고 있다. 들판을 달린다. 목적지도 없는 듯 그저 달려간다. 간간이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