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詩)

8. 무념

최길시 2021. 12. 13. 17:59

8. 무념

 

바닷가 바위 끝

암자 하나

담장 너머

능소화 두어 송이

 

열린

법당 안

빙긋 웃음짓는

부처님 실눈

 

한밤

달은 밝은데

댓닢 스치는

한 줄기 바람소리

 

 

 

 

 

 

. 버스는 남도(南道)의 시골 자락을 구불구불 휘돌아 간다. 그 자락마다 드문드문 인적 끊긴 집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고

    독(孤獨)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 있다. 흔들거리는 내 몸도 시골길이 된다.

 

     숲 속 돌다리 건너 계단을 오른 언덕 위에 작은 암자가 있다. 속세의 먼지를 떨쳐버리듯 해탈문(解脫門)을 들어선다.

    시간이 멈춘 듯한 한여름의 산사(山寺)는 한적하고 고즈넉하다. 잠시나마 미혹(迷惑)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문 열린 법당에는 석조미륵불 하나만 오롯이 가부좌를 하고 있다.

 

     들판을 달린다. 목적지도 없는 듯 그저 달려간다. 간간이 창을 뚫고 들어와 얼굴에 닿는 볕은 여전히 폭염(暴炎)인데,

    벼포기를 흔드는 살랑바람은 이미 가을의 손길이고, 그 손짓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벼이삭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느새 이 아픈 여름도 고개를 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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