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詩)

9. 당신은 누구십니까

최길시 2021. 12. 14. 15:46

9. 당신은 누구십니까

 

보리밭 그 너머 아지랑이 따라

천방지망 나풀대던 나비 앞에

아련한

한 줄기 향기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살에 휩쓸리고 바위에 부서지고

칠흑같은 어둠속 절체의 그 순간에

깜박인

등댓불 하나

당신은 누구십니까

 

갈대꽃 날리는 벼랑 끝 언저리

나날이 사그라지는 잿불 불씨에

애타게

부채질하던

당신은 누구십니까

 

섣달그믐 자정이 머지않은 이 시간

홀연히 팔 벌리고 나타날 것만 같은

당신은

기약없는 당신은

정녕 누구십니까

 

 

 

 

 

 

. 살아가면서 어려움과 괴로움을 겪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 크기와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구를 막론하고 방황하고, 갈등하고, 좌절을 겪는 때가 어디 한두 번이겠습니까? 삶의 경쟁에서 나앉아 해질 때를 기다

   리며 넋놓고 있다고 해서 생명에 부딪혀오는 바람까지 비켜가주지는 않는군요. 그래서 古人들 하나같이 삶 자체가

   海라고들 했겠지요만. 어려웠을 때 나의 버팀목이 되었던 것을 하나만 말하라면 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시계

   의 합격기, 방송통신대학의집념의 배움길, 그리고 이러저러한 수상, 수필집들이었습니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나는 10대 때가 암흑이었습니다. 20대 이후는 방황 하나는 확실히 없어졌으니까요. 극한을 참아내야 하는 끝 모르는

   시간, 불투명한 미래가 힘들었습니다.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누구에게 하소할 일도 아니고, 들키

   기 싫어 혼자 밤바다에 나가 번득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눈물을 씻어내리곤 했지요. 될 대로 돼라자포자기하여 나락

   으로 떨어지려는 마음을 떠받치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한 번만 더 다잡아보면 안되겠냐고……끈질

   기게 마음을 밀어대던 실체도 없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나 혼자의 인내와 용기라고 하기엔 참 끈질기고 강인한 무엇이었습니다. 나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바로 그 당신

   언제나 나를 다독이고, 꾸짖고, 격려하며, 채찍해 주었기 때문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게 누구인지 모릅니다. 때문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을 하염없이 기다릴 테지요. 아마도 당신은 끝내 나타나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저승에 가면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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