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詩)

11. 홍콩 단상(斷想)

최길시 2021. 12. 17. 11:29

11. 홍콩 단상(斷想)

 

코발트빛

청화백자 접시 위에

버터로 구운

햄버거 하나

 

백 년을

다듬고 가꿔온

네온등 아름다운

남국의 정원

 

현란한 조명 아래

나이 찬 무희(舞姬)의

치맛자락 끝에 매달려

흔들리는 구슬

 

오월 초이레

곡마단 트럼펫 소리 뒤로

마지막 손님 부르는

저물녘의 단오터

(2002년 3월)

 

 

 

 

 

 

☆. ‘홍콩 간다’는 말을 내가 처음 들은 건 80년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황홀경에 빠진다’는 뜻이라는 설명을 듣고도 언

   뜻 와닿지 않아 멍청했었다. 우리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89년 이전부터 홍콩은 속어(俗語)에 등장할 정도로 환상

   적인 도시, 별천지의 대명사였다. 6.25 전쟁의 잿더미에서 끼니도 잇지 못해 허덕이던 때(1954)인데 ‘홍콩아가씨’란 유

   행가가 대히트를 했을 정도니까.

 

    그 말도 이제 사어(死語)가 된 듯하지만, 요즘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

   중국과 홍콩 정부의 강압으로 시민단체가 집회를 취소했는데도 수십만 시민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는 뉴

   스를 보며 왜 내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며 울컥해지는가? 3년 살았던 옛 정 때문에라도 홍콩이 옛날의 자유롭고

   화려했던 시절로 어서 돌아갔으면 좋겠다. ‘홍콩 간다’는 말이 되살아나 다시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 일국양제(一國兩

   制)가 끝나는 2047년 이후엔 어떻게 될까?

 

    그 홍콩에 파견근무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도 하지 않던 일이었다. 파견교장 시험이 있다길래 홧김에 쳐본 시험에

   합격해버린 것이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지도 10여년이 지난 2001년이었는데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홍콩 가네!’라는

   부러움 겸 축하의 말을 들었고, 가 보니 그때도 홍콩 번화가와 야경은 명불허전, 그야말로 ‘홍콩 간다’는 말을 속속들이

   실감했다. 일본의 도쿄, 오사카에서 볼 수 없었던, 동양이면서 완벽하게 정착된 서양의 색다른 문화와 질서와 번화가

   어리둥절하고 들뜨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중국에 반환된 지 5년이라는 변화가 곳곳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는 느낌을 받아 왠지 불안했었는데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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