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詩)

12. 더라

최길시 2021. 12. 18. 08:00

12. 더라

 

바늘끝마음 하나 세울 자리 없네

고개를 드니

눈 밖은 끝없는 세상이더라

 

운명의 여신은 어디에

빌며 헤매었는데

여신은 마음속에 앉았더라

 

하늘로 목은 늘어나고

등허리 허전하다

바라고 기댈 곳은 나뿐이더라

 

내 땅은 산비탈 자갈밭

하늘만 쳐다보았네

비는 마음속 구름에 있더라

 

내다보니 내일 앞에 또 내일

발밑을 내려다보니

오늘이 절벽 끝에 섰더라

 

어디로 어디까지 가려는가

왜 가야 하는가

명이더라

 

 

 

 

 

. M국민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한참 선배되는 한 분이 날마다 교무실 칠판에 유머나 격언 같은 걸 한 토막씩 쓰고는 해

   설이나 농담 비슷한 토를 붙여놓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 라고 쓰고는,‘나는 내 일생이 수우미양가(당시 학습 평가 5

   단계) 중에 만 되면……’.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 내 얕은 지혜와 인생 경험으로는 그 깊은 뜻에 이를 정도가 못되었

   던 것, 지금에서야 그 선배의 얼굴이 또렷이 스쳐갈 때가 있다.

 

    가끔 지나온 날들이 필름 되어 돌아간다. 잘했던 일은 스르르 돌아가고, 못했던 일들이 톱니에 걸려 자꾸 덜커덕거린

   다. ‘이러 저러한 땐 참 어리석었구나. 왜 그런 바보 같은 판단과 결정을 했을까? 이건 이랬으면 좋았겠고, 저건 저랬더

   라면 이상은 되어 이렇게 덜커덕거리지는 않을 텐데……. 그때 어리고 미욱한 나를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톡톡 건드

   려 주기만이라도 했더라면…….' 눈이 조금 트인 지금 보니 지혜를 열어주는 선인, 선배들의 책도 세상에 차고 넘쳤는데

   그런 것을 접할 기회도 없었으……, ! 어쩌면 그런 찬스가 옆을 스쳤는데 내가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지도 모를 일.

 

    잘못 타고난 시대를 탓해 본 적도 있었다. 한창 자라는 나이에 6.25가 터져 주변에 널린 건 전쟁쓰레기요, 손 끝에 잡

   히는 거라곤 찢긴 포탄껍데기와 흩어진 총알 뿐이었으니, 나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 인생의 최대의 구원(仇怨)은 김일

   성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남아 있는 여정(旅程)이라도 더 이상은 어리석지 말아야겠기에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활자를 훑어도 나오는 건 한숨

   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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