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절가조(時節歌調) 20

19. 강릉 이모우션(Emotion) 2

19. 강릉 이모우션(Emotion) 2 한저욹 야밤중에 매러운 오짐 참고 참다 해던나 퍼데기 쓰고 뜨럭 끝에 나서서 대뜨방 든내놓으니 호렝이 온대도 시원해 뒷집 밤나무 아래 밤아레기 개락이래 장배기에 밤꼬셍이 떨어질까 겁이나도 이떠금 주우러 가믄 땡삐들이 왱왱거려 소꼴기 옥씨끼 줄게 노더거 가라 했거늘 에떠 온단 말도 않고 꽁지빠져라 내빼더니 발고락 자불뜨렸다니 고것 참 싸구지다 까오치에 문데비에 보리마뎅이 에릅잖소 땀나지 않게 시나미 쉬미쉬미 할래도 잔등에 해 걸렸으니 우떠하면 좋소야 세월은 흐르고 흘러 꿈속 세상 되어가고 나라는 부재되어 사는 헹펜 펬다지만 옛정서 흔적꺼정 없어져 옛추억이 애리잖소

18. 명(命)

18. 명(命) 천수 누리고 명 다한 고목 등걸 바람도 스쳐가고 새들도 오잖는데 움 하나 새 명 받들어 하늘 여는 신비함 명 받아 눈 떠보니 날개 있되 날 수 없네 날지 못하고 죽을꺼나 쉬지 않은 날개짓 명 걸고 탈거한 것은 방명(方命)인가 순명(順命)인가 생과 사는 천명이라 그 누가 말했던고 올 때는 명 받아 바람 실려 왔더라도 가는 건 내 마음대로 훨훨 날아 가고지고. ☆. 길가에 짓밟히는 풀포기, 땡볕 아래 모래밭을 사는 작은 벌레를 보면서 생명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느낀다. 6.25전쟁통에는, 하필이면 왜 이런 나라에 태어났을까 한탄도 원망도 했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그야말로 꿈에도 상상도 못했었다. 지금 이렇게 풍요와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행복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불평 불만이 가득하다. 옛날의..

17. 기 다 림

17. 기 다 림 어릴 적엔 까치발 딛고 ‘어디쯤 오실까’ 철들고는 야무지게 ‘내게 행운은 언제 오나’ 행여나 홍시 떨어지길 고대하던 빈 마음 누구는 로또 맞고 어느 집은 대박났대 나라고 안 오겠나 누구에나 온다는 것 멀거니 복바라기하다 한평생이 가버렸네 모두들 떠나갔고 해도 져서 어두운데 허공 향해 목을 빼는 얄궂은 기다림 꼴까닥 숨멎어야 끝나는 원초적 숙명인가 ☆. 요즘 초·중 학생들의 소풍지는 놀이기구가 있는 곳, 여러 사람이 자유롭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우리 학생시절의 소풍지는 언제나 그늘이 있는 잔디밭이었다. 하는 놀이도 정해져 있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수건돌 리기를 하든가 보물찾기, 씨름과 닭싸움은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보물찾기는 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한 번..

16. 가는 길

16. 가는 길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이끌리듯 떠밀리듯 무작정 걷는 길 안갯속 빈 나루터에 배는 떠났고 얼마를 걷게 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영원을 갈 것처럼 행전 쳤었지 고작해 칠팔십리길 굳은살이 시린데 ☆. 여행을 좋아했다. 그저 걷는 것도 좋았고, 자동차며 배며 비행기며 타는 것도 그저 좋았다. 적막하게 주저앉아 멍하니 공상을 헤매기보다 휘적휘적 새로운 사물들과 환경에 따라 상상이 반짝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진 걸까, 이제는 기력이 떨어져 만사가 귀찮아 꼼짝하기 싫은 걸까? 다가올 다음 세상의 여행도 재미롭지 않을까? 심장 멈춘 육체가 땅속으로 스며드는 여행도 궁금하고, 영혼이 건넌다 는 강 여행도 흔들흔들 즐겁지 않니할까? 아무리 인생이 떠돌이라지만 이..

15. 毛道의 從心所欲

15. 毛道의 從心所欲 눈 귀 흐릿하고 기억은 아련하고 허리 굽고 기진하여 매사가 귀찮은데 스르르 꿈나라 여행가서 그냥 거기 살았으면 싹쓸바람 몰아쳐 세상 티끌은 쓸어가도 마음 속 여든 굴곡엔 켜켜이 쌓인 티끌 깨끗이 버리고 잊을 묘안인들 없을라나 ‘七十而 從心所欲 不踰矩’라 했건만 장조(杖朝)가 되었어도 종잡을 수 없으니 차라리 所欲 버리고 귀잠이나 들었으면 毛道 : 『불교』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범부(凡夫). 종심소욕(從心所欲) :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좇아서 함. ≪논어≫의 편에 나오는 말.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 論語·爲政편에 나오는 말로, ‘70세에 뜻대로 행동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 장조(杖朝) : 나이 여든 살을 이르는 말. 중국 주나라 때에, 여든 살이 되면 ..

14. 산수(傘壽)에 걸터앉아

14. 산수(傘壽)에 걸터앉아 협로 뚫고 나오느라 죽을 힘 다했겠고 고하(苦河) 헤치느라 사생결단해 왔는데 출거도 이수(二竪)에 시달리리 산수(傘壽)는 어드멘가 어떻게 살아왔나 돌아보니 자취 없고 어디로 가고 있나 내다봐도 오리무중 고희면 종심이라더니 산수 끝 풍경만 흔들리고 더 이상 갈 곳도 가얄 곳도 없는데 바람 부는 대로 그냥저냥 살자 하나 팔십 년 한숨 쉬어 봐도 사는 의미 모르겠네 ☆. 유아원 꼬마들이 선생님 손을 잡고 고물고물 천연스레 지나간다. 뜬금없이 가슴 한쪽이 찌릿해지며, 오만가지 옛일들 이 머릿속을 떼지어 덮어온다. 나의 70여년 전 그 시절과 저 아이들의 70년 후를 생각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은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시대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데, 시대의 물결은 지도자라는 ..

13. 일구지난설

13. 일구지난설 어렸을 적 어머니 말씀 ‘사는 게 일구지난설이다' 뜻 몰라 의아해도 물어보지 못했었지 고래희 살아보고 나니 이제사 알 듯하네 인간사 신비란 건 나고 죽는 순간뿐 살아오며 외줄 위 춤 어찌 다 말로 하랴 역사는 쳇바퀴 돈다지만 일상은 일구지난설 생각하는 갈대라며 이런 생각 저런 수작 영장(靈長)이라 으스대며 간교하기 그지없지 마음은 뜬구름 같고 짓거리는 일구지난설 일 좀 밀리면 바빠서 죽겠다고 일 좀 없으면 살기 힘들어 죽겠다고 사람 삶 짐승과 다르랴 사는 게 일구지난설 고의적삼에 짚신 신고 허위허위 붉은 언덕 뭍에선 불개미 떼 물에선 거머리 떼 발자취 뒤돌아보니 과거사 일구지난설 속끓이고 시치미 떼고 살아가니 망정이지 경전 배워 양심대로 살 수 없는 인간 세상 사는 게 일구지난설이란 원..

12. 만년(晩年) 영춘(迎春)

12. 만년(晩年) 영춘(迎春) 종다리 울음소리 하늘 위로 날아도 고희 넘은 광음은 노곤해 귀찮은가 봄볕이 아양떨어도 펴지지 않는 굽은 잔등 밥상 위 달래 냉이 봄바람이 일렁이고 쑥잎 씹는 잇사이에 봄 내음이 끼여도 마음속 고드랫돌은 닥쳐올 일에 매달렸고 부슬부슬 봄비에 그리움이 젖는데 뻐꾸기가 추억 깨워 사진첩을 뒤적인다 봄밤을 잠 못 드는 건 다정인가 노심인가 ☆. 봄이 청춘을 꼬득였던가, 청춘이 봄을 안달했던가? 해마다 봄이 오면 두근거리고 하늘을 날던 마음도, 여든 번이나 반 복되다보니 지겹고 시들해졌나보다. 옛날 아버지들은 겨우내 사랑방에서 발이나 자리를 매거나 노를 꼬셨다. 밤 늦도록 달그락거리던 고드랫돌 소리가 멈 추는가 싶으면 곧 봄이 오고 있었다. 어제가 입춘이라는데 앞산자락에 덮여 있는..

11. 코로나

11. 코로나 인간의 오만방자에 미물이 대로했나 광관(光冠)이란 미명붙여 달래보려 하였어도 아뿔싸 위대한 영장 일상이 속절없이 무너지네 힘도 형체도 없는 것이 세상을 뒤엎었네 불똥은 인간 속에 숨어 천지사방 튀는데 불낸 놈 뒤돌아앉아 콧구멍만 후비고 하늘에 누가 있어 굽어보면 가관일레 나라 따라 수령(首領) 따라 우왕좌왕 천태만상 인지(人智)가 우주 나른대도 섭리를 넘을쏜가 ※ 코로나=광관(光冠), 햇무리, 달무리 ☆. 이게 무슨 난린가 싶다. 오래 살다보니 별 난리를 다 겪어본다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보면 잘 숨죽이고 살던 바이러스 를 인간이 벌집 쑤시듯이 들쑤셔 이 분란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살아있는 사람도 참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로 인 해 생명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은 지하에서 얼마나 분통을..

10. 빨랫줄

10. 빨랫줄 지도 그린 이부자리 땀 내 전 고의적삼 집안 애환 내걸어 말리고 바랬는데 이제는 이름 석자도 역사속으로 사라질 듯 무게가 버거우면 바지랑대가 받쳐주고 날마다 내걸어도 젖은 손길이 정겨웠지 이제는 내팽개쳐져 늘어지고 녹슬었다 팽팽히 긴장하며 한평생을 당겼었지 힘겹고 고달파도 운명이라 생각했지 공치사 바란 적 없으나 서운함이 흔들린다 ☆. 예전에는 집집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요용물이었다. 이사 갈 때도 먼저 빨랫줄을 걷어다 새 집에 걸었다. 주로 철사줄 이 사용되다가 6.25전쟁 후에는 군대 통신용 전선이 널리 사용되었다. 빨랫줄에 내걸리는 빨래를 보면 그 집안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주택이 아파트로 바뀌고 빨랫대가 대신하면서 빨랫줄은 옛 시골집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물이 되어 머지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