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절가조(時節歌調)

13. 일구지난설

최길시 2022. 2. 6. 12:27

13. 일구지난설

 

어렸을 적 어머니 말씀 ‘사는 게 일구지난설이다'

뜻 몰라 의아해도 물어보지 못했었지

고래희 살아보고 나니 이제사 알 듯하네

 

인간사 신비란 건 나고 죽는 순간뿐

살아오며 외줄 위 춤 어찌 다 말로 하랴

역사는 쳇바퀴 돈다지만 일상은 일구지난설

 

생각하는 갈대라며 이런 생각 저런 수작

영장(靈長)이라 으스대며 간교하기 그지없지

마음은 뜬구름 같고 짓거리는 일구지난설

 

일 좀 밀리면 바빠서 죽겠다고

일 좀 없으면 살기 힘들어 죽겠다고

사람 삶 짐승과 다르랴 사는 게 일구지난설

 

고의적삼에 짚신 신고 허위허위 붉은 언덕

뭍에선 불개미 떼 물에선 거머리 떼

발자취 뒤돌아보니 과거사 일구지난설

 

속끓이고 시치미 떼고 살아가니 망정이지

경전 배워 양심대로 살 수 없는 인간 세상

사는 게 일구지난설이란 원죄의  뜻이런가

 

 

※ ‘일구지난설’이란 강릉지방 방언. ‘엉망, 엉망진창, 난리법석,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이 무인지경’등의

   뜻으로 쓰였음.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사어가 되었음.

 

 

 

 

 

☆. 오직 한 번뿐인 생(生)인데 왜 그렇게 허위허위 살아야 했을까?

   그렇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삶이 각박하여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기에 손톱끝만한 생활의 여유

   나 한치의 마음의 빈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순간도 없이 삶의 발끝만 내려다보고 뒤뚱뒤뚱 걷다가, 이제 먹을 것 입을 것에 여유가 생겨

   허리 펴고 고개를 들고 둘러보니 세상은 너무도 달라져 있고, 돌아보니 살아온 날들은 아쉽기만 하다. 돌아본들 어쩔

   것이며 후회한 들 어쩔 거냐?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네 삶은 이번 한 번 뿐이다.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열심히만 하면 먹고살아가는

   데 궁색하지 않을 것이며, 설혹 어려운 지경에 빠지더라도 나라가 굶어죽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형편이 되었으니,

   자신이 가고싶은 길, 펴고싶은 날개, 흔들어보고싶은 팔다리를 마음껏 여한없이 흔들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다만 절대

   로 남을 해치거나 남의 인생을 방해하는 일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만 깊이 새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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