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詩)

10. 가을 그날에

최길시 2021. 12. 15. 15:07

10. 가을 그날에

 

가을 그날엔

예닐곱 소년이고 싶다

하늘도 날아보고

새털구름에도 앉아보는

세상 밖 소년이고 싶다

 

가을 그날엔

혼자이고 싶다

하늘도 땅도 다 잊고

가을볕 아래 알몸으로

갈바람에 가슴속 풀어헤치고 싶다

 

가을 그날엔

임종 앞둔 도공(陶工)이고 싶다

한뉘 이루지 못한 그 하나

돌아가는 물레 앞에 흙 한덩이 잡고 앉아

세월의 잿무덤 위 마지막 불꽃에 기도하고 싶다

 

가을 그날엔

한 줄기 바람이고 싶다

근원 모르는 그리움 좇아

하얀 길 따라 무작정

빈 마음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다.

 

 

 

 

 

 

. 세계 최빈국이었던 5,60년대, 의식주 해결과 질병에 하루 살이가 힘겨워 그나마 외국의 구호물자에 목숨을 매달고 살

   아야 했던 그 시절. 보릿고개로 대변되던 봄은 어른들에겐 힘든 계절이었겠지만 철없는 우리들에겐 화창한 그저 아름

   답고 나른한 순간이었다. 돋아나는 새싹과 꽃으로 허기를 메우면서도 잘 산다는 게 무언지 모르던 시절이었으니까,

   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살아가는가 보다 했다.

 

    가을은 구원의 계절이었다. 가을이 곧 한 해를 허덕이며 살아온 삶의 보람이었다, 날마다 꿈속이요 희망이었다. 집이

   아니라도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 먹을 것이 있어 아무 데나 헤매는 것 만으로도 야위어가는 목숨에 힘이 붙었다.

   두가 마음이 넉넉해져 우리들은 들로 산으로 훨훨 날아다녔다. 가을 그날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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