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옛날얘기
바느질하는 엄마 곁에
화로를 안고 앉아
옛날얘기를 조릅니다
무릎을 흔들며 실끝을 당기며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호렝이 담배 먹던 시절
깊은 산 속
어느 마을에
호랑이가 바람을 몰고오나 봅니다
싸락눈이 문풍지를 때립니다
바깥문이 덜컹거립니다
콩닥콩닥 가슴이 뜁니다
꼬부랑 할멍이가 살았대
‘에이, 또 그 얘기’
하면서도
침을 꼴깍 삼킵니다
엄마 곁으로 바짝 다가앉습니다
어느 날
꼬부랑 할멍이가
꼬부랑 지팽이를 짚고
꼬부랑 길을 가는데
굽은 허리춤에서 나오던 하얀 곶감과
헝클어진 흰머리의 외할머니가 생각납니다
솔바람 소리 무섭던 외갓집 오솔길
소름이 돋습니다
꼬부랑 똥이 매렵더래
꼬부랑 낭게 올라가
꼬부랑 똥을 누는데
꼬부랑 개가 와
꼬부랑 똥을 먹더래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쥐었던 주먹이 펴집니다
화롯불은 재가 되었습니다
바람도 갔나 봅니다
꼬부랑 지팽이로
꼬부랑 개를 때리니
‘꼬부랑 깽 꼬부랑 깽’
도망가더래.
잠자리에 듭니다
꿈속에서
담배 먹는 호랑이를 만납니다
꼬부랑 할머니를 만납니다.
☆. 내 어린 시절이 아련합니다. 몇 번이고 들어도 싫지 않았던 ‘꼬부랑 할머니’ 얘기를 이제는 더 들을 수도 없고, 꿈에
나타나 주지도 않습니다.
동화책도 장난감도 없던 어린 시절, 어머니 입이 동화책이었고, 사금파리 조각과 들꽃과 풀잎과 나뭇가지가 장난감
이었지요. 우리 어머니 입속에는 동화책이 너덧 가지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같은 얘기가 반복되어 나와, 다른 걸 해
달라고 강짜를 부리면 아예 입을 닫아버리셨지요.
단조롭고 궁핍했지만, 아름답고 순진한 동심이 얼마 이어가지 못하고 6.25라는 김일성의 전쟁놀음에 산산히 부서지
고 말았습니다. 꿈과 낭만 대신에 가난과 두려움과 무력(無力) 속에 극한의 삶이 청소년의 일상이 되어 일생동안 그렇
게 살아야 했습니다.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것도 삶 다음의 문제였습니다.
요즘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의 어린 시절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사심없고 앞을
볼 줄 아는 현명한 지도자가 온몸으로 바깥 바람을 막아주는 안락한 나라에서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다음엔 내
가 내 마음 바람만 잡으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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