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詩)

4. 고 향

최길시 2021. 12. 9. 19:24

4. 고 향

 

그리워

언덕에 오르면

멀리

실개천 흐르고

하늘가 산그림자 옛날 같은데

잡초 우거진

빈 들녘엔 정적만 흘러……

고향은

마음에 있네

 

못잊어

동구에 서면

아련히

옛친구들 떠오르고

뭉게구름 산들바람 옛날 같은데

세월에 쓸려

그 풍정 간곳이 없어……

고향은

꿈속에 있네

 

뜰앞에 서

눈 감으면

도란도란

그 목소리 새어나오고

스르르 미닫이 열릴 듯한데

불러도 대답없고

그리움에 찬바람만 일어……

추녀 끝에

저녁 노을이 지네

 

 

 

 

 

호사수구(狐死首丘)라 했던가! ()어머니와 닿아 있고, 태 묻은고향에서 혼()을 받은 때문일까? 어머니와 고

    향은 말만으로도 그립고 무의식에서도 가슴 깊은 곳에 있었다.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때 일본에 몇 년 산 적이 있었다. 한국말하는 사람만 봐도 반갑고 애국가만 들어도 가슴 밑

    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 울컥하였다. ‘고향(故鄕) 까마귀도 반갑다는 속담을 실감했다. 애국심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

    었지만 그 보다 더 원초적인 영혼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재외동포들이 조국을 떠나 몇십 년이 지나고 몇 대가 되

    어도 왜고국에 목마르고 애가 타는지 알 것 같았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다는 유행가 가사는 고향에 갈 수 없는

    체념의 아픈 자위리라!

 

     머지않아 우주시대가 열려 다른 행성으로 여행 가고 이민 가면, 허공에 떠있는 아름다운 초록별을 바라보며, 고성(

    星)을 그리는 노스탤지어는 고향(故鄕), 고국(故國)을 그리는 향수보다 더 절절하지 않을까?

 

     나는 44에 고향을 떠났다. 어쩌다 지나다 보면,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개발이란 이름으로 성형하고 새옷 입고 있어 낯

    선 외국 거리에 온 것처럼 어설퍼 뒤돌아서는 발길이 무겁고 가슴에 쓸쓸한 바람만 지났다. 산수(傘壽)를 바라보고 있

    는 지금, 흐려가는 기억 속 고향의 해거름에 잿빛 안개가 낀 듯, 그리움도 저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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