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람 속에서
3-1 최 길 시
☆. 지금은 제목만 확실한 나의 첫 시. 1959년 학교 문예지『보리밭』에 실렸던.
반세기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세상이 상해지변(桑海之變)되어 그 추억의 보리밭도 이제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보리밭』도 찾을 길 없어, 제목만 먼 기억 속에 바람처럼 일렁일 뿐……. 전후 잿더미를 파헤치며 먹고살기에 골몰했던
혹세(惑世)가 아니었더라면 자라가던 사소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연필자국으로라도 남아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영특
하지도 미리 내다볼 지혜도 없던 나는 그런 것들을 챙겨두지 못했었고…….
30리길 통학 버스 속에서 바람을 내다보며, 책가방을 끼고 걸으며 신작로의 흙바람 속에서 한 구절씩 태어난 것이었
다.‘ …… 바람이 파도와 들판과 계곡과 산맥을 만들고, 그 바람에 우리들도 다듬어지고 깎여 간다……’가 어렴풋하다. 추
억이 된 그 청춘과 낭만과 꿈들이 보릿고개의 보리밭 사잇길로 눈을 감는다. 노을 그윽한 이 석양에 난데없는 돌풍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쪽 같은 성품으로 문예반 지도에도 열정적이셨던 윤명(尹明) 선생님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