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애오욕에 빠지지 아니하고
너울 너울
수많은 사연을 안으로 침묵하는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자장가 부르며 다독이며
모래톱의 사연을 잠재우는
사르륵 사르륵
어머니의 손길 같은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흰 갈기 흩날리며 위선을 질타하고
푸른 서슬로 불의를 내리치는
우르릉 쾅 우르릉 쾅
그 위용, 그 준엄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며
언제나 움직임으로 깨어 있어
처얼썩 처얼썩
쉬지 말라 깨우쳐 주는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여린 듯 억세고
무심한 듯 다정하고
척 솨아 척 솨아
수평선의 의지, 심해의 포용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 중3(1956) 연말, 들떠있는 졸업반 교실에 누가 몰고왔는지 난데없이 ‘싸인’이란 바람이 불었다. 문방구에서는 컷이나
도안이 그려져 있는 ‘싸인지’라는 걸 팔았고, 어떤 사람은 도화지에 컷을 등사한 싸인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노트와 만
년필(한 반에 두어 명 가졌을까? 그때 노트 필기는 주로 펜에 잉크를 묻혀 썼다. 가지고 다니는 잉크를 쏟아 대부분의
가방은 얼룩져 있었고)을 들고 싸인 받으러 부산히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주위로부터 ‘졸업 축하·격려의 말’을 받
는다는 것이었다(이 유행은 1,2년 반짝 하다 사라졌던 것 같다. 3년 후 졸업 때에는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나도 싸인용지를 사기도 하고 도화지에 등사하기도 하여, 꽤 여러 장을 돌렸는데, 돌아오지 않은 것도 있고, 장난삼아
농담을 끼적여 준 것도 있었지만, 2,30장은 진심을 담아 정성들여 쓴 고마운 것이었다.
고졸 직후, 방황하던 어느 날 책상 정리를 하다가 중학교 때의 그 싸인지들을 발견하고 들쳐보다가 ‘너는 바다의 파
도가 되어야 한다. 움직임으로 살아있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글에 전율을 느꼈고, 허우적대던 가슴에 붙잡을 기둥 하나
가 서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내 의지를 불태우며 살아오는 동안, 세태에 젖어 초라해지고 절벽에 꿈이 꺾이고 처지에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그 말이 나를 잡아주고 추슬러주고 채찍질해 주었다. 그것으로 쓴 시다.
그 싸인지들이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 행방을 알 수 없고, 더욱 안타까운 일은 내게 있어 천금이 된 그 글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이 시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쉼없이 움직이게 된다면, 내게 이 글 준 사람
에게 보답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젊은 시절, 나에게 씌워져 있던 껍질을 깨고 뛰쳐나가려고 그 속에서 남모르게 무던히 애쓰던 때, 누구에게 상담도
하소할 수도 없어 답답하고 서글플 때면 곧잘 바닷가에 나갔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커다란 가슴을 벌리고 있
었고, 파도는 그 안에서 또 그렇게 부지런히 철썩이고 있었다. ‘움직임으로 살아있음에 보답하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