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개 망 초
가녀린 몸매에
하얀 모시적삼이 애처로운
가슴앓이하는 여인
산 설고 물 선
먼 이국땅에 날려와
바람에 불리는 대로 아무데나 주저앉아
이름도 고작 ‘개-’를 붙여 받았을 뿐
뿌리박고 정들면 고향이라고
열이레 달빛 아래에 선
창백한 이방의 여인
☆. 개망초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뼈마디 앙상한 자그마하고 하얗던 그 여인의 손!
1962년인가 3년이었을 것입니다. 가을이 그야말로 절정에 닿아 내리막을 내려다보고 있던 때. 근무하던 M국민학교
에서 10월초 연휴에 교직원 소풍을 설악산으로 갔습니다. 설악산이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이었지요. 비포장도로에 흔
들리는 몸보다 마음은 더 들떠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새내기 몇은 일행을 뒤로하고 먼저 가을 숲을 헤치며 비선대로 향했습니다. 더 멀리 더 높
이 올라가 숨은 단풍 비경을 보자고 의기 투합하여……. 시원스레 펼쳐진 비선대의 너럭바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위
아래에 움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위 밑에 의지하여 움막을 짓고, 그 앞에 과자 몇 봉지와 산머루주 올려놓은
손바닥만한 좌판을 펴 놓고, 소복을 한 어깨 좁은 여인이 부근에서 딴 머루로 담은 머루주와 도토리묵을 팔고 있었습
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병을 얻어 이리로 요양을 왔다면서……. 생활에 보탬이 될까 하여 좌판을 벌였다는 것
입니다. 머루주에 아린 맛과 그 앙상한 손이 그 여인을 바로 쳐다볼 수 없게 하였습니다. 몇 년 후 다시 갔을 때는 그
여인도 움막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나아서 귀향했을까?
지금도 개망초꽃을 보면, 머루주와 도토리묵을 내어주던 앙상하고 작은 하얀 손이 어른거립니다. 5,60년대에는 폐결
핵에 걸린 사람이 많았는데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산에서 요양하며 자연에 비는 수밖에 없었지요. 요행히 나은 사
람도 더러 있기는 한 모양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리 5,60년대는 그 여인의 앙상한 손만큼이나 저리고 아픈 시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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