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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추볼 마음

2. 대추볼 마음 고향집 추수라며 부쳐온 붉은 대추 탐스런 진홍빛은 가을볕과 정성일레 노 스승 장수하라는 제자의 대추 볼 마음 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는 목밀(木蜜)을 한두 알 입에 넣어 혀 끝으로 음미하니 스르르 달콤한 그 정성 온 몸에 스미네 ☆. 50여년 전 제자로부터 집에서 수확했다는 대추를 받고 문득 젖어오는 소소한 이 행복감. ‘왜 사는가?’ 물으면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들 한다. 모두들 행복을 바라면서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도모한다. 돈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권력이 되었든 궁극은 행복을 구하는 노력인 것이다. 그런데 80 평생을 살아보니, 삶의 행복이 란 어쩌다가 특별하고 거창한 무엇이 쏟아지듯이 주어지는 것보다(그런 것이란 자주 오는 것이 아닐 뿐더러),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감동이 수..

1. 하일 서정(夏日抒情)

1. 하일 서정(夏日抒情) -여름 한낮의 교정- 교사가 떠나갈 듯 소란하던 소리들 온종일 들썩이던 생동하던 활기들 모두들 산으로 바다로 보내고 불볕 아래 잠 든 교정(校庭). 바람은 잦아들어 풀잎 하나 까딱 않고 운동장은 속살 드러낸 채 은밀히 누워있다 한순간 세상이 혼절(昏絶)한 듯 시간도 멎은 듯. 일하던 개미들도 자취를 감추었고 절규하던 매미는 울다 지쳐 잠들었다 불현듯 비행음 한줄기 졸리운 정적(靜寂)을 깨운다. ☆. 무섭도록 쓸쓸한 삶의 고독에 휩싸일 때가 있지요. 이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듯한 알 수 없는 두려움. 삼복 중의 한낮, 시골 학교 당직.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인 것 같았습니다. 활짝 열어놓은 창밖은 붉은 태양에 점령당한 듯. 운동장은 어제 내린 소나기에 하얗게 삼베로 염을 하고 ..

3.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3.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애오욕에 빠지지 아니하고 너울 너울 수많은 사연을 안으로 침묵하는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자장가 부르며 다독이며 모래톱의 사연을 잠재우는 사르륵 사르륵 어머니의 손길 같은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흰 갈기 흩날리며 위선을 질타하고 푸른 서슬로 불의를 내리치는 우르릉 쾅 우르릉 쾅 그 위용, 그 준엄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며 언제나 움직임으로 깨어 있어 처얼썩 처얼썩 쉬지 말라 깨우쳐 주는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여린 듯 억세고 무심한 듯 다정하고 척 솨아 척 솨아 수평선의 의지, 심해의 포용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 중3(1956) 연말,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