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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가을 그날에

10. 가을 그날에 가을 그날엔 예닐곱 소년이고 싶다 하늘도 날아보고 새털구름에도 앉아보는 세상 밖 소년이고 싶다 가을 그날엔 혼자이고 싶다 하늘도 땅도 다 잊고 가을볕 아래 알몸으로 갈바람에 가슴속 풀어헤치고 싶다 가을 그날엔 임종 앞둔 도공(陶工)이고 싶다 한뉘 이루지 못한 그 하나 돌아가는 물레 앞에 흙 한덩이 잡고 앉아 세월의 잿무덤 위 마지막 불꽃에 기도하고 싶다 가을 그날엔 한 줄기 바람이고 싶다 근원 모르는 그리움 좇아 하얀 길 따라 무작정 빈 마음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다. ☆. 세계 최빈국이었던 5,60년대, 의식주 해결과 질병에 하루 살이가 힘겨워 그나마 외국의 구호물자에 목숨을 매달고 살 아야 했던 그 시절. 보릿고개로 대변되던 봄은 어른들에겐 힘든 계절이었겠지만 철없는 우리들에겐 화창..

9. 당신은 누구십니까

9. 당신은 누구십니까 보리밭 그 너머 아지랑이 따라 천방지망 나풀대던 나비 앞에 아련한 한 줄기 향기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살에 휩쓸리고 바위에 부서지고 칠흑같은 어둠속 절체의 그 순간에 깜박인 등댓불 하나 당신은 누구십니까 갈대꽃 날리는 벼랑 끝 언저리 나날이 사그라지는 잿불 불씨에 애타게 부채질하던 당신은 누구십니까 섣달그믐 자정이 머지않은 이 시간 홀연히 팔 벌리고 나타날 것만 같은 당신은 기약없는 당신은 정녕 누구십니까 ☆. 살아가면서 어려움과 괴로움을 겪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 크기와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누 구를 막론하고 방황하고, 갈등하고, 좌절을 겪는 때가 어디 한두 번이겠습니까? 삶의 경쟁에서 나앉아 해질 때를 기다 리며 넋놓고 있다고 해서 생명에 부딪혀오는 바람..

3. 박물관에서

3. 박물관에서 누천년 전 그 미소가 어제인 듯 생생하여 고작 칠십 지나온 내 자취 돌아본다 처마 끝 풍령 자락에 바람이 스친다. 저와 나 사이의 세월은 간 곳 없고 느껴올 숨결을 유리가 막아섰다 눈감고 내 숨도 멈춰라 천 년을 덮을세라 시공(時空)도 덧없고 목숨도 속절없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창밖엔 햇빛이 눈부신데 그림자가 흔들린다 ☆. 가끔 박물관에 가 옛 그 시대의 풍정에 빠져보기도 하고, 주말마다 TV쇼 진품명품을 넋을 놓고 꿈속인 듯 즐긴다. 이 런 행동은 나의 어떤 역사 의식에서라기보다 인간의 뿌리에 대한 원천적 동경에 대한 무의식적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마음이 개운하고 시원해진다기보다 오히려 묵직한 무엇, 인간의 역사에 대한 신비와 의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