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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나머지공부

21. 나머지공부 짝꿍마저 돌아간 널따란 교실 한구석에 우두커니 턱을 괴고 앉아 책 속의 옛 얘기도 선생님의 내일 말씀도 도무지 뵈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내 생각엔 뒤떨어진 것도 더 배울 것도 없는데 아르르 왜 나만 남겨놓은 것일까 날은 어둡고 눈발은 날리고 데리러 오는 사람도, 가도 좋다는 말씀도 없어 핑그르르 그만 눈물이 돈다 앙상히 식어가는 가슴을 붙잡고 어두운 골목에 서서 어어이, 야들아 불러도 대답없는 술래가 되고만다. ☆. 옛날 국민학교에 나머지공부라는 게 있었다. 학력이 뒤쳐져 수업시간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을 학습 지진아(遲進兒) 라고 부르며 방과 후에 따로 남겨 공부시키는 것이었는데, 한글이나 사칙을 깨치지 못한 아이들이 주 대상이었다. 삶 의 형편도 교육환경도 열악했던 때였으니 지진아들이..

6. 티눈 하나

6. 티눈 하나 인생사 무사무고란 야무진 희망일 뿐 천재지변만 저어하랴 믿던 도끼 발등 찍고 발바닥 티눈 하나에 일상이 절뚝이네 봄볕이 좋다 하나 바람이 시새우고 물거울 같은 내마음에 무심한 돌 날아드네 무심코 흘린 말씨 하나 목에 걸려 대롱대롱 평화로운 초원에 하이에나 설쳐대고 맑은 강물 흐리는 건 미꾸라지 한 마리 만물의 영장 세상이라고 예외는 아니로세. ☆. 하루 하루 배 채우는 일도 어렵던 어린 시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사는 줄 알았었다. 한참 후에 선진국 사람들은 발달된 문명의 혜택을 흠뻑 받고 큰 불편함 없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 리는 왜 이렇게 사는가, 언제 우리도 저렇게 잘 살 수 있을까 부러워하고 잘못된 나라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지금..

20. 말도 없이

20. 말도 없이 말도 없이 아침이 왔다가 저녁이 갑니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제 홀로 왔다가는 걸 무심히 맞고 보냅니다 말도 없이 새 날이 오고 새 달이 갑니다 나며 들며 그네처럼 흔들리다 속절없이 달력만 넘깁니다 말도 없이 봄이 왔다 겨울이 갑니다 꽃을 맞았는데 낙엽을 보냅니다 싸락눈이 설움처럼 문풍지를 때립니다 말도 없이 청춘이 왔다 한생이 갑니다 막이 엊그제 열려 절정이 언제였던가 모르는데 종막을 알리는 징이 웁니다 지나 온 외길이 그림자로 밟힙니다 귓가에 고고(呱呱)가 쟁쟁한데 안녕 인사말이 객쩍어 바람자듯 가뭇없이 가야겠지요. ☆. 국민학교 운동회 때 내가 제일 싫어한 것이 달리기였다. 보나마나 언제나 내가 꼴찌였으니까.(아, 언젠가 한 번 꼴찌 에서 2등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도중에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