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詩)

20. 말도 없이

최길시 2021. 12. 27. 17:44

20. 말도 없이

 

말도 없이

아침이 왔다가

저녁이 갑니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제 홀로 왔다가는 걸

무심히 맞고 보냅니다

 

말도 없이

새 날이 오고

새 달이 갑니다

나며 들며

그네처럼 흔들리다

속절없이 달력만 넘깁니다

 

말도 없이

봄이 왔다

겨울이 갑니다

꽃을 맞았는데

낙엽을 보냅니다

싸락눈이 설움처럼 문풍지를 때립니다

 

말도 없이

청춘이 왔다

한생이 갑니다

막이 엊그제 열려

절정이 언제였던가 모르는데

종막을 알리는 징이 웁니다

 

지나 온

외길이

그림자로 밟힙니다

귓가에 고고(呱呱)가 쟁쟁한데

안녕 인사말이 객쩍어

바람자듯 가뭇없이 가야겠지요.

 

 

 

 

 

 

. 국민학교 운동회 때 내가 제일 싫어한 것이 달리기였다. 보나마나 언제나 내가 꼴찌였으니까.(, 언젠가 한 번 꼴찌

   에서 2등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도중에 넘어지는 바람에) 꼴찌일 게 뻔한데도 뛰기를 거부한 적도 없었고, 도중에

   기권 한 번 하지 않고 결승선까지 뛰었다. (스포츠맨십 발휘?) 출발선에 손끝을 맞춰 엎으려 자세로 준비하고 있을 때

   가 제일 두근거려 싫었다. 차라리 준비’, ‘소리가 나면 두근거림과 초조함이 없어졌다. 꼴찌거나 말거나 힘껏 바람

   을 가르는 것이 그래도 좋았다. 나도 결승 테이프를 한 번 끊어보고 싶었지만, 내가 결승선에 도착하면 이미 테이프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 그 결승테이프를 한 번도 내 가슴으로 안아본 적이 없어 참 서운하였었

   다.

 

    언젠가, 인생도 출발선과 결승선의 인식이 분명한 운동회의 달리기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꼴찌하거나 말거나 인생의 출발선에서 가슴두근거리며 시작을 기다리는 것도 좋겠고, 그리고 출발 신호가 나면 있는

   힘을 다해 죽을둥살둥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고, 그리고 결승선에서 골인할 때 내가 테이프를 끊지 못하더라도 내가

   이렇게 내 인생을 끝맺음하는구나깨달으며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어찌어찌 태어나 어린 시절 철없이 보내고, 살아가면서 열심히 산다고는 했지만 세월이 언제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

   겠고, 그런데 이제는 강가에 떠밀려 흔들리는 젖은 종이배가 되어 있는 건지, 이러다가 또 나도 모르게 파도에 휩쓸려

   물속에 가라앉고 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종말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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