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나머지공부
짝꿍마저 돌아간
널따란 교실 한구석에
우두커니
턱을 괴고 앉아
책 속의 옛 얘기도
선생님의 내일 말씀도
도무지
뵈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내 생각엔
뒤떨어진 것도 더 배울 것도 없는데
아르르
왜 나만 남겨놓은 것일까
날은 어둡고 눈발은 날리고
데리러 오는 사람도, 가도 좋다는 말씀도 없어
핑그르르
그만 눈물이 돈다
앙상히 식어가는 가슴을 붙잡고
어두운 골목에 서서
어어이, 야들아
불러도 대답없는 술래가 되고만다.
☆. 옛날 국민학교에 나머지공부라는 게 있었다. 학력이 뒤쳐져 수업시간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을 학습 지진아(遲進兒)
라고 부르며 방과 후에 따로 남겨 공부시키는 것이었는데, 한글이나 사칙을 깨치지 못한 아이들이 주 대상이었다. 삶
의 형편도 교육환경도 열악했던 때였으니 지진아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꽤 집요하게 나머지공부
를 시켰던 것 같다. 이 아이들을 하루빨리 지진아 그늘에서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의 어떤 의무감 같은 것도
작용했던 것 같고, 스승의 은덕을 베푼다는 어쭙잖은 자만(自慢)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리석음과 부끄러움이 덮누른다. 그 아이에게 그걸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죄스러움
이 무겁다. 그 아이의 마음과 심정을 헤아려줄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그 아이는 얼마나 불안하고 서글프고 외로웠
을까?
지금 나는, 이승의 지진아가 되어 점점 텅 비어가는 교실에 남겨져 하릴없이 오도카니 앉아있다. 글자도 눈에 들어오
지 않고 더 공부할 마음도 없다. 옆 반에도 나처럼 나머지공부로 여태 남아있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창밖에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땅거미가 지고 있는데……. 무섭고, 외롭고, 서글프다. 나도 고콜불이 아련히 비치고 아랫목이 따뜻
한 내집, 영원한 내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이제 돌아가도 좋다’고 선생님이 허락도 내리지 않고, 귀를 세워도 ‘어
서 가자’고 데리러 오는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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