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詩)

19. 동백꽃

최길시 2021. 12. 26. 09:48

 

19. 동백꽃

 

당신은

당신은

봉오리 시절에도

피어날 때에도

활짝 피어난 다음에도

애절히 아름다웠지만

떨어져 누운 그 모습은

더욱 처연히 아름다웠습니다

 

세월에도 빛바램 하나없이 꼿꼿이

풍파에도 추하거나 처량하지 않고 단정히

단두의 최후에도

눈썹하나 까딱 않고

불타는 입술 벙긋이

수줍은 환희 머금은 채 그대로

남긴 자리조차 깔밋하게

그 마지막 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나도 지금 동백꽃이고 싶습니다.

 

 

 

 

. 1964,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논산육군제2훈련소 훈련을 마치고 대구 육군군의학교에서 의무기초과정 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훈련 4준가 5

   주가 끝난 일요일 외출,외박 나갔던 사람들이 그 동백아가씨를 안고 들어와 삽시간에 병영 안은 동백꽃 물결로 떠나

   갈 듯하였습니다. 훈련 집합하여 학과 출장 나갈 때도 동백아가씨가 행군 군가였습니다. 동행하는 교관도 조교도 제지

   하지 않고 같이 목줄을 세웁니다. 늦가을 갈바람에 야위어가던 길가의 갈댓잎도 가슴을 쥐어짜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부대배치 받은 부산에서 바로 위 고참을 따라 첫외출을 나갔다가 들른 한 클래식 감상실(‘칸타빌레였던가?)

   서는 베토벤이 나오다 뜬금없이 동백아가씨가 흘러나오고, 객석에서는 환성이 터지면서 관객 하나의 날아갈 듯한 춤

   사위에 숨이 멎는 것 같았고……. 가는 곳마다 길거리 라디오방에서는 애절한 멜로디가 끊이질 않았지요.

 

    내가 태어나 자란 강릉에는 동백이 자생하지 않아, 동백은 소설로, 어머니 머릿기름으로 듣거나 그림으로나 보거나

   했지 실제로 가까이서 마음을 주고받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2월 일본 오사카엘 갔는데 거기는 동백

   이 한창이었습니다. '아, 가슴앓이 하는 소녀의 창백한 얼굴 한가운데의 붉은 입술 같은…….'  지나다니는 길가 화원에

   예쁜 동백꽃 분재가 있어 사다가 집에 들였습니다. 날마다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느 날 일본인 친구가 왔다가,

    ‘이런 말해서 어떨지 모르지만, 일본사람들은 동백꽃은 집 안에 잘 들이지 않아. 떨어진 동백꽃이 일본도에 잘린

   단두의 모습 같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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