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이전) 자유게시판 1598

'자작나무' 이야기

글쓴이 kilshi 2006-11-20 14:19:32, 조회 : 2,195 내가 자작나무에 대하여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정비석씨의 기행문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였다(강릉지방의 야산에서는 자작나무를 보기 어려웠었기 때문).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해선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으로 시작되는 그 글은 구절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명문으로, 우리 때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대학입시에 단골로 출제되는 단원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입시공부를 하며 '훈민정음 서'와 ‘기미독립선언문’ 전문, 그리고 ‘용비어천가’ 와 이 ‘산정무한’의 자주 출제되는 부분을 통째로 외우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글의 자작나무가 나오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

'자작나무' -용 혜 원-

글쓴이 kilshi 2006-11-19 23:18:11, 조회 : 1,393 나는 연전(年前)에 몽골과 러시아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수까지 버스로 이동하였는데, 여러 시간 가는 동안 길 양쪽은 빽빽한 숲의 연속이었다. 자작나무, 소나무, 백양나무, 낙엽송, 전나무, …. 그런데 안쓰러웠던 것은, 저렇게 흰 살결의 연약해 보이는 자작나무가 왜 하필 이 허허벌판에, 겨울이면 한파와 눈보라가 무섭게 휘몰아칠 이 시베리아에, 오도 가도 못하고 저렇게 숲을 이루고 애달프게 서 있을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자작나무 용 혜 원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I Am the Wind(나는 바람)' -Zoe Akins-

글쓴이 kilshi 2006-11-18 10:51:45, 조회 : 2,216 I Am the Wind Zoe Akins I am the wind that wavers, You are the certain land; I am the shadow that passes Over the sand. I am the leaf that quivers, You, the unshaken tree; You are the stars that are steadfast, I am the sea. You are the light eternal -- Like a torch I shall die. You are the surge of deep music, I -- but a cry! 나는 바람 조이 에이킨즈 나는 흔들리는 바람 너는..

셰익스피어 감상(109) '명예란'

글쓴이 kilshi 2006-11-17 23:22:56, 조회 : 1,152 남의 앞에 서는 사람은 특히 명예와 자존심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것도 스스로 내세우는 그것이 아니라, 남들이 인정해주는 그것이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에 상처가 나거나 때까지 끼게 되면, 하루 빨리 스스로 남의 앞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습니다. 굳이 그 자리를 지키려고 뻗대다보면 본인도 치사해져 더 이상 갈 곳을 잃게 되고, 그것을 보는 사람도 안타깝다 못해 역겨워지기까지 합니다. 명예란 Perseverance, dear my lord, Keeps honor bright. To have done, is to hang Quite out of fashion, like a rusty mail In monumental mock'ry..

셰익스피어 감상(108) '우리는'

글쓴이 kilshi 2006-11-16 22:26:46, 조회 : 1,114 아침에 아무 생각없이 대모산에 가다가 중산고등학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정문 앞에서 평소보다 많이 늘어선 승용차들과, 수험생들보다 더 초조하고 걱정스런 표정의 학부모들과, 커피며 과일을 준비한 수험생 후배들과, 경찰과 수위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대입 수능 시험날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곰삭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아픈 추억들이, 나밖에 모르는 여러 해 동안의 쓰라린 기억들이 머리를 쳐들고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Something may be done that we will not; And som..

2006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소설 ‘눈(Snow)'에서(7)

글쓴이 kilshi 2006-11-16 12:21:49, 조회 : 1,335 그 소년은 신(神)을 배우고 연구하는 이슬람신학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믿지 말아야 하는 건지, 불확실성의 갈등에 늘 괴로워한다. 이 세상에는 그것에 대한 명쾌한 답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납득할 만한 답을 줄 사람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것이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신을 믿지 않는 고통을 용감하게 감수하셨군요.”(신을 믿으면, 그의 감정, 생각, 행동 일체를 신에 결부시키게 되니까) “제 마음 속에서 ‘신을 믿지 마’ 하는 소리를 들어요. 어떤 것의 존재를 너무나 절실하게 믿을 때면, 어떤 의심이나 호기심을 느끼..

2006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소설 ‘눈(Snow)'에서(6)

글쓴이 kilshi 2006-11-10 22:24:39, 조회 : 1,346 이슬람신학고등학교 학생인 소년은, 누구도 속시원히 답을 주지 않는 문제에 대해 ‘카’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한다. 신은 존재하고, 현생의 고통의 의미는 내세에 천국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싶지만, 현실은 그 믿음에 간단없이 혼란을 던져주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신이 없다면 천국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평생을 빈곤과 결핍, 그리고 억압받으며 살았던 수백만 명의 사람은 천국에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그 많은 고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삽니까? 이 많은 고통을 쓸데없이 왜 겪고 있습니까?” 이런 의문은, 나도 그 시기에 아주 궁금해 하던 것들이었다. 지금 생각하..

셰익스피어 감상(107) '자연에 어긋나는 행위는'

글쓴이 kilshi 2006-11-10 10:25:24, 조회 : 1,235 우리는 어릴 때, 이를 빼러 가거나 주사 맞으러 진료실에 들어갈 때, 한사코 들어가지 않으려는 우리에게, 그냥 보이기만 하지, 절대로 이를 빼거나 주사를 맞지 않는다는 엄마의 약속을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믿기지 않아 불안하기만한 심정으로 진료실에 들어가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들어가 보면 아니나 다르랴! 어머니의 ‘절대로’의 약속은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적인 속임은 우리를 이렇게 튼튼히 길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요즘 정치, 정부가 하는 짓들을 보면, 정치가 애들 소꿉놀이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다가 싫으면 그만 두기도 하고, 금방 판을 바꿔버리기도 하고, 자기들의 잘못과 실패를 변명하기 위한 사..

2006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소설 ‘눈(Snow)'에서(5)

글쓴이 kilshi 2006-11-08 21:57:55, 조회 : 1,334 ‘카’는,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가슴 터지도록 기쁜 일이 생기면 항상 불행과 절망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 올 불행이 더더욱 커지지 않도록 행복한 순간을 되도록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여러분은 어땠습니까? 나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지요, ‘세상일이란 늘 나쁜 일만 겹치거나 좋은 일만 계속되는 법은 없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때문에, 행복과 기쁨에 너무 빠져 있으면 그로 인하여 액이 닥칠 것 같아 드러내 놓고 즐거움을 만끽하고, 행복에 도취하는 것을 되도록이면 자제하려고 한 때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