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 81

4. 고 향

4. 고 향 그리워 언덕에 오르면 멀리 실개천 흐르고 하늘가 산그림자 옛날 같은데 잡초 우거진 빈 들녘엔 정적만 흘러…… 고향은 마음에 있네 못잊어 동구에 서면 아련히 옛친구들 떠오르고 뭉게구름 산들바람 옛날 같은데 세월에 쓸려 그 풍정 간곳이 없어…… 고향은 꿈속에 있네 뜰앞에 서 눈 감으면 도란도란 그 목소리 새어나오고 스르르 미닫이 열릴 듯한데 불러도 대답없고 그리움에 찬바람만 일어…… 추녀 끝에 저녁 노을이 지네 ☆. 호사수구(狐死首丘)라 했던가! 태(胎)는‘어머니’와 닿아 있고, 태 묻은‘고향’에서 혼(魂)을 받은 때문일까? 어머니와 고 향은 말만으로도 그립고 무의식에서도 가슴 깊은 곳에 있었다.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때 일본에 몇 년 산 적이 있었다. 한국말하는 사람만 봐도 반갑고 애국가만 ..

2. 대추볼 마음

2. 대추볼 마음 고향집 추수라며 부쳐온 붉은 대추 탐스런 진홍빛은 가을볕과 정성일레 노 스승 장수하라는 제자의 대추 볼 마음 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는 목밀(木蜜)을 한두 알 입에 넣어 혀 끝으로 음미하니 스르르 달콤한 그 정성 온 몸에 스미네 ☆. 50여년 전 제자로부터 집에서 수확했다는 대추를 받고 문득 젖어오는 소소한 이 행복감. ‘왜 사는가?’ 물으면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들 한다. 모두들 행복을 바라면서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도모한다. 돈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권력이 되었든 궁극은 행복을 구하는 노력인 것이다. 그런데 80 평생을 살아보니, 삶의 행복이 란 어쩌다가 특별하고 거창한 무엇이 쏟아지듯이 주어지는 것보다(그런 것이란 자주 오는 것이 아닐 뿐더러),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감동이 수..

1. 하일 서정(夏日抒情)

1. 하일 서정(夏日抒情) -여름 한낮의 교정- 교사가 떠나갈 듯 소란하던 소리들 온종일 들썩이던 생동하던 활기들 모두들 산으로 바다로 보내고 불볕 아래 잠 든 교정(校庭). 바람은 잦아들어 풀잎 하나 까딱 않고 운동장은 속살 드러낸 채 은밀히 누워있다 한순간 세상이 혼절(昏絶)한 듯 시간도 멎은 듯. 일하던 개미들도 자취를 감추었고 절규하던 매미는 울다 지쳐 잠들었다 불현듯 비행음 한줄기 졸리운 정적(靜寂)을 깨운다. ☆. 무섭도록 쓸쓸한 삶의 고독에 휩싸일 때가 있지요. 이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듯한 알 수 없는 두려움. 삼복 중의 한낮, 시골 학교 당직.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인 것 같았습니다. 활짝 열어놓은 창밖은 붉은 태양에 점령당한 듯. 운동장은 어제 내린 소나기에 하얗게 삼베로 염을 하고 ..

3.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3.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애오욕에 빠지지 아니하고 너울 너울 수많은 사연을 안으로 침묵하는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자장가 부르며 다독이며 모래톱의 사연을 잠재우는 사르륵 사르륵 어머니의 손길 같은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흰 갈기 흩날리며 위선을 질타하고 푸른 서슬로 불의를 내리치는 우르릉 쾅 우르릉 쾅 그 위용, 그 준엄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며 언제나 움직임으로 깨어 있어 처얼썩 처얼썩 쉬지 말라 깨우쳐 주는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여린 듯 억세고 무심한 듯 다정하고 척 솨아 척 솨아 수평선의 의지, 심해의 포용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 중3(1956) 연말, 들..

2. 바람 속에서

2. 바람 속에서 3-1 최 길 시 ☆. 지금은 제목만 확실한 나의 첫 시. 1959년 학교 문예지『보리밭』에 실렸던. 반세기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세상이 상해지변(桑海之變)되어 그 추억의 보리밭도 이제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보리밭』도 찾을 길 없어, 제목만 먼 기억 속에 바람처럼 일렁일 뿐……. 전후 잿더미를 파헤치며 먹고살기에 골몰했던 혹세(惑世)가 아니었더라면 자라가던 사소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연필자국으로라도 남아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영특 하지도 미리 내다볼 지혜도 없던 나는 그런 것들을 챙겨두지 못했었고……. 30리길 통학 버스 속에서 바람을 내다보며, 책가방을 끼고 걸으며 신작로의 흙바람 속에서 한 구절씩 태어난 것이었 다.‘ …… 바람이 파도와 들판과 계곡과 산맥을 만들고, 그 바람에..

- 詩集을 내며 -

- 詩集을 내며 - 因, 그리고 70년 緣의 결실 –나의 詩 행력- 국민학교 6학년(1953). 6.25로 학교집이 불타버려, 작은 칠판을 들고 산으로 냇가로 사랑방으로 돌아다니다가, 학부모들의 울력으로 흙벽 초가의 가교사를 지어줘 비록 바닥은 흙이었지만 호사스럽게 판자(대패질도 안 된 거친 판자) 책걸상에서 공부하게 되어 황송했는데, 며칠 되지 않아 선생님께서 뜬금없는 숙제를 내셨다. ‘시 한 편씩 써 오너라’ ‘시? ’ 난감하였다. ‘접한 기회도 별로 없었고 배운 기억도 없는 생소한 시를 써 오라고?’ 태어나 처음으로 ‘詩’ 라는 걸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 어떻게 써야 하는 건가? 안 해 가면 호랑이 선생님 벌이 무서울 텐데…….’ 고민하며 여기저기 뒤적거리다가, 형 책상의 중학교..

최길시 시집 2021.11.27

목차

목차 1. 序詩 2. 바람 속에서 3. 너는 바다의 파도가 되어야 한다 4. 고 향 5. 개 망 초 6. 옛날얘기 7.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멥니다 8. 무념 9. 당신은 누구십니까 10. 가을 그날에 11. 홍콩 단상(斷想) 12. 더라 13. 아름답게 나이들게 하소서 14. 무 제(無題) 15. 저 소리 없는 소리를 16. 최선(最善)을 다하라 17. 조각구름처럼이라도 18. 아가야 19. 동백꽃 20. 말도 없이 21. 나머지공부 22. ‘열심’이 아름답습니다 23. 그곳, 좋겠다 24. 자문(自問) 25. 여운(餘韻) 26. 고향의 봄 27. 人 間에서 28. 황혼, 그 기막힌 순간을 지나며 29.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30. 기다리는 심정 31. 희망사항 32. 맘에게 33. 세상 34.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