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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산수(傘壽)에 걸터앉아

14. 산수(傘壽)에 걸터앉아 협로 뚫고 나오느라 죽을 힘 다했겠고 고하(苦河) 헤치느라 사생결단해 왔는데 출거도 이수(二竪)에 시달리리 산수(傘壽)는 어드멘가 어떻게 살아왔나 돌아보니 자취 없고 어디로 가고 있나 내다봐도 오리무중 고희면 종심이라더니 산수 끝 풍경만 흔들리고 더 이상 갈 곳도 가얄 곳도 없는데 바람 부는 대로 그냥저냥 살자 하나 팔십 년 한숨 쉬어 봐도 사는 의미 모르겠네 ☆. 유아원 꼬마들이 선생님 손을 잡고 고물고물 천연스레 지나간다. 뜬금없이 가슴 한쪽이 찌릿해지며, 오만가지 옛일들 이 머릿속을 떼지어 덮어온다. 나의 70여년 전 그 시절과 저 아이들의 70년 후를 생각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은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시대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데, 시대의 물결은 지도자라는 ..

13. 일구지난설

13. 일구지난설 어렸을 적 어머니 말씀 ‘사는 게 일구지난설이다' 뜻 몰라 의아해도 물어보지 못했었지 고래희 살아보고 나니 이제사 알 듯하네 인간사 신비란 건 나고 죽는 순간뿐 살아오며 외줄 위 춤 어찌 다 말로 하랴 역사는 쳇바퀴 돈다지만 일상은 일구지난설 생각하는 갈대라며 이런 생각 저런 수작 영장(靈長)이라 으스대며 간교하기 그지없지 마음은 뜬구름 같고 짓거리는 일구지난설 일 좀 밀리면 바빠서 죽겠다고 일 좀 없으면 살기 힘들어 죽겠다고 사람 삶 짐승과 다르랴 사는 게 일구지난설 고의적삼에 짚신 신고 허위허위 붉은 언덕 뭍에선 불개미 떼 물에선 거머리 떼 발자취 뒤돌아보니 과거사 일구지난설 속끓이고 시치미 떼고 살아가니 망정이지 경전 배워 양심대로 살 수 없는 인간 세상 사는 게 일구지난설이란 원..

12. 만년(晩年) 영춘(迎春)

12. 만년(晩年) 영춘(迎春) 종다리 울음소리 하늘 위로 날아도 고희 넘은 광음은 노곤해 귀찮은가 봄볕이 아양떨어도 펴지지 않는 굽은 잔등 밥상 위 달래 냉이 봄바람이 일렁이고 쑥잎 씹는 잇사이에 봄 내음이 끼여도 마음속 고드랫돌은 닥쳐올 일에 매달렸고 부슬부슬 봄비에 그리움이 젖는데 뻐꾸기가 추억 깨워 사진첩을 뒤적인다 봄밤을 잠 못 드는 건 다정인가 노심인가 ☆. 봄이 청춘을 꼬득였던가, 청춘이 봄을 안달했던가? 해마다 봄이 오면 두근거리고 하늘을 날던 마음도, 여든 번이나 반 복되다보니 지겹고 시들해졌나보다. 옛날 아버지들은 겨우내 사랑방에서 발이나 자리를 매거나 노를 꼬셨다. 밤 늦도록 달그락거리던 고드랫돌 소리가 멈 추는가 싶으면 곧 봄이 오고 있었다. 어제가 입춘이라는데 앞산자락에 덮여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