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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이야기(2); 강릉사람들의 혈연과 학연.

최길시 2021. 10. 2. 09:33

 

글쓴이 권오익 2006-07-10 09:00:06, 조회 : 1,854

 

여기 들어오는 손님들은 아무래도 강릉 출신이 많은거 같습니다.
동호초교 출신도 몇명 들어오는것 같고.......
다들 주인님 닮아서 조용하고 젊잖은 분들로 보여집니다.
그렇다치고, 강릉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방사람들은 대게 보수적인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태백산맥이 가로막혀 외지와의 교류가 적었던 시절, 강릉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생할방식에 적응했고
그러다보니 끼리끼리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씨족간의 혼사도 중첩되다보니 겹사돈도 많았습니다.
강릉토박이 세명중에 한명은 혼인으로 이어진 혈연관계란 말이 있을정도니 말이죠.

강릉과 여러모로 비슷한 안동도 예외는 아닙니다.
안동이 오늘날 한국유학의 본산으로 자리 잡은것도 안동의 험난한 지리적 요인도 한몫했습니다.
외부의 간섭이 적다보니 그저 자기들끼리 또아리를 틀고 '에헴'하며 살았던거죠.
그러다보니 자연히 문벌의 발호가 심했고 자기들끼리의 규범과 학설로 시대를 제단했습니다.

안동에는 안동권씨, 풍산류씨, 의성김씨, 진성이씨가 4대 문벌로
자기들 끼리 서로 혼인하며 영향력을 발휘해 옵니다.
전라도엔 행주기씨, 장흥고씨, 충주박씨, 탐진최씨가 세를 형성하며 지역사회를 리드합니다.

강릉도 지난 천년동안 지역에서 세를 이루며 향토사회를 선도한 세력이 있습니다.
강릉김씨와 강릉최씨 그리고 인원은 적었지만 나름대로 역활을 맡았던 강릉박씨, 강릉함씨등이 그들입니다.
강릉김씨는 명주군왕 김주원이후 강릉의 토호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고,
강릉최씨는 임금의 부마인 최필달의 보호아래 힘을 키웠으며, 고려후기에 강릉으로 들어온 최입지(전주계),
최문한(강화계)의 후손들이 가세하여 강릉에서 강릉김씨와 대립각을 세우며 성장했습니다.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외지에 있던 성씨들이 하나,둘 강릉으로 들어옵니다.
이른바 '객반'인데 오늘날 강릉에서 자리잡은 삼척심씨, 평해황씨, 창녕조씨, 안동권씨, 안성이씨, 평택임씨,
연일정씨, 전주이씨등등....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토착세력에게 때로는 굽신거리면서 또 때로는 맞짱을 뜨면서 치열하게 생존하게 됩니다.
하여 오늘날 토착세력에 버금가는 세를 이루게 됩니다.

뭐,공정한 평가와 기준은 아닙니다만,
강릉의 향촌사회에서는 사람을 평가하는 등급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그사람들의 얘기죠.
즉, 강릉김씨나 강릉최씨로 강릉상고(지금은 강고)나 유수한 학교를 나오면 1등급인 성골이고,
그외의 성씨로 위 학교를 나오면 2등급인 진골이며,
이도저도 아니면 향촌사회에서 대접을 받기 힘들다는 그런 얘기 말이죠.

요즘에야 많이 희색되었지만 한동안 강릉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될려면
강릉김씨던가 아니면 강릉최씨던가 그도아니면 강릉상고를 나와야된다는 얘기는
강릉사회가 얼마나 혈연과 학연을 중시하는지 알수있는 대목입니다.

매번 느끼지만 강릉사람만큼 출신학교 따지는 곳도 드뭅니다.
소생 생각으로는 아마 전국최고인것 같아요.
외지에서 강릉사람 만나면 피차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물어봅니다.
"저..........어느 학교?"
얘긴즉, 상고냐 농고냐 강고냐 명고냐, 이실직고 아뢰렸다. 이거죠. ㅋㅋ

언제부터는 강릉에서 강고 안나오면 괜히 능력이 없는놈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 학교를 안 다니면 괜히 고개 숙이며 기가 죽는걸 많이 봅니다.
교육은 문외한 이지만 난 늘 외칩니다.
'강릉에서는 빨리 고교 평준화를 실시 하는게 옳다' 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