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 2006-12-09 12:06:04, 조회 : 1,103 |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잔뜩 찌푸린 주말의 한 낮입니다. 내려다보이는 단지 내 길거리에는 차들도 사람들도 뜸한 차분히 가라앉은 주말입니다. 스피커에서는 모차르트의 Clarinet Concerto가 흐릅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파일을 정리하다보니 전에 ‘셰익스피어와 함께하는 세상’에서 보내준 시(詩)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차라리 눈이라도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커피라도 마시며 시 감상이나 해봅시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 호 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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