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 2006-09-08 18:14:37, 조회 : 1,640 |
나는 왠지 8월이 좋다. 견디기 어렵게 무덥고, 모질게 물어대는 모기가 지겨운 달이지만 하루하루 사는 재미가 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흙냄새 맡으며 땀 흘리면 금방 소쿠리 하나 가득 굵은 감자가 담길 것 같고, 맥고모 눌러 쓰고 한적한 소나무 숲길을 걸어가면 저만큼 맞은편에서 오래 그리워하던 그 사람이 두 팔 벌리고 나타날 것 같고, 태양이 작열하는 바닷가 모래밭에 누우면 파도가 먼 나라의 소식을 찰싹찰싹 들려주며 스르르 잠재워줄 것 같고, 매미 소리 긏지 않는 저녁나절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 위에 모여 앉으면 흰 박꽃 위로 커다란 나방이가 신비의 세계로 이끌어 갈 것 같은, …… 그런 8월이 좋다.
그런데 금년 8월은 나의 큰 소망 하나가 이루어졌다. 미국의 심장부를 본 것이다. 거의 8월 한 달을 매일같이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허리 통증도 잘 다스리며 강행군을 잘 견뎌내고, 그 8월을 넘기기가 두려워 쉬지 않고 부랴부랴 돌아온 것이다. 8월 내내 알차게 미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곳은 지금, 가는 곳마다 시(詩)처럼 붉은 백일홍이 한창이었다. 우리 것보다 더 붉은 빛이, 오염되지 않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여인의 붉은 입술처럼 내 얼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8월의 소망
오 광 수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반가운 8월엔
소나기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얼굴이 되고
만나면 시원한 대화에 흠뻑 젖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으랴?
푸름이 하늘까지 차고 넘치는 8월에
호젓이 붉은 나무 백일홍 밑에 누우면
바람이 와서 나를 간지럽게 하는가
아님 꽃잎으로 다가온 여인의 향기인가
붉은 입술의 키스는 얼마나 달콤하랴?
8월에는 꿈이어도 좋다
아리온의 하프소리를 듣고 찾아온 돌고래같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를 듣고
보고픈 그 님이 백조를 타고
먼먼 밤하늘을 가로질러 찾아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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