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 2006-06-17 11:56:39, 조회 : 1,839 |
휴무 토요일인가 싶을 정도로 조용한, 산들바람이 유난히도 신선한 아침이다. 오랫동안 이 바람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바람에 초록 세상이 하늘거린다. 봄에는 나무마다 초록색이 조금씩 달라, 멀리서도 색깔로 나무를 대강 구별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한결같이 건강한 짙은 초록을 내뿜고 있다.
벌써 밤꽃이 피었나보다. 밤나무 숲에 그 비릿한 독특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퍼진다. 그렇지, 6월도 중순이 넘었으니 밤꽃이 필 때가 되었지. 벌통 가진 사람들은 밤나무 숲으로 숲으로 모여들 것이다. 옛날 이 무렵,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매다가 밤나무 그늘에 누워 벌과 함께 그 비릿한 향기를 맡으며,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곤 했었지. 그리고 그 구름처럼 허허로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울고 웃으며, 즐거워하고 슬퍼하며, 그리워하고 미워하며 그저 살과 피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었지.
피와 살로 된 인간
I will be flesh and blood;
For there was never yet philosopher
That could endure the toothache patiently,
However they have writ the style of gods
And made a push at chance and sufferance.
(Much Ado About Nothing 5.1.35-38)
나는 피와 살로 된 인간으로 만족하네.
제 아무리 신과 같은 문체로 글을 쓰고
불행과 고통에 감연히 맞서던 철학자라 할지라도
치통을 참으며 견디어 내는 사람은 결코 없는 게니까.
(『헛소동』5막1장 35-38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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