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이제 만나러 갑니다’
더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화석이 되어도 좋았지만
말라 비틀어져가는 줄기 속에
마지막 남은 꽃눈 하나
그것마저 화석으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꽃눈과 화석을 양손에 부르쥐고
죽음의 강을 건넜습니다
돌아보니 두고온 당신을
차마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아, 이곳은 그야말로 별천지입니다
봄볕 가득한 푸른 하늘이 가슴 속으로
눈과 입이 닫기지 않습니다
한입 가득 웃음 베어 물고 돌아보니
아, 거기에 거기에는
뿌리를 하늘로 거꾸로 매달려
삶의 마지막을 오열하는 줄기 줄기들이
화석의 숲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덮쳐옵니다
이 자유가 이 행복이 벼락으로 쏟아집니다
‘내가 이러고도 사람입니까?’
어떻게든 견뎌내 주세요
‘이제 만나러 갑니다’
날마다 눈물로 지샙니다
말도 없이 떠나버린 당신
행방도 모르고 소식도 없습니다
순간 순간 그리워 그리워
고마운 당신을 만날 날이
가까워오고 있음이 희망입니다
기다려 주세요
당신이 간 길 따라
갠지스의 물결에 실려
‘이제 만나러 갑니다’
하늬바람 불고 함박눈 내립니다
우리 헤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강나루에 서서 넘어가는 해를 바라봅니다
실어다 줄 배를 기다립니다
왔다가는 가야 하고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게 되는 것
시절 따라
생과 사로
하늘과 땅으로 헤어진 우리
다시 당신 계신 그곳으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
☆. 살던 곳을 떠나면 더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든 이와 헤어지면 못 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떠나고 헤어지면 낯선 곳에서도 새로운 사람들과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또 그렇게 살아갑니다. 과거는 가슴속 저 밑바닥으로 점점 가라앉으며 잊혀가도 깊은 곳에 가시가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 가시가 때때로 찔러 와 바위처럼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6.25 전쟁을 통해서 피 맛을 경험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의 강과 시체의 무덤을 넘으며 수십 년을 속으로 흐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저승에 가도 이승의 인연들과 다시 만난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