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싸리비
법고소리에 눈비비고 댓돌로 나선다
태초의 신비런가 산사의 새벽 뜰
싸리비
스쳐간 공덕에 이슬비 스며들다
시절 얼룩에 너저분한 낙서들
어수선한 내 한뉘 뜰 쓸어줄 비 없는가
싸리비
보이지 않고 땅거미는 내리고
☆. 70년대, 도시 큰 학교와 시골의 작은 학교가 자매결연을 맺어 교류하며 선물도 주고 받았는데,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서 학생들 모금으로 학용품, 운동 도구 같은 것을 사 보내면, 시골 자매학교에서는 학무모들이 싸리비를 매어 한 차씩
답장을 보내왔다. 그 싸리비는 일 년 내 학교 운동장과 교사 구석구석을 깨끗이하는 데 절대적이었다. 한 해가 지나면
싸리비는 거의 닳아 몽당비가 되고, 또 새 싸리비가 연례처럼 배달되었다.
늦가을이 되면 집집마다 한겨울 동안 난방으로 쓸 화목을 장만하였는데, 그때 잘 자란 싸리나무를 베어다 일 년 내 마
당 구석구석을 쓸 싸리비를 몇 자루씩 만들었다. 촘촘히 난 잔 가지들은 낭창낭창 여리면서도 질겨서 마당을 쓸어 청
소하는 데 그만이었다. 이제는 시골 가도 플라스틱 비가 대신하여 싸리비를 보기 어렵다. 흙마당을 쓸어보면 플라스틱
비가 싸리비만 영 못한데.
마음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가 있다. 어쩌지도 못하는 잡생각에 휘둘려 혼란스러울 때 이것들을 쓸어 없애든 지우든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하고도 어리석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잘 사라지지도 않는 어지럽고 어수선한 마음을
깨끗이 쓸어버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언젠가 템플스테이하던 날 이른 새벽 방문을 열고 댓돌에 나섰다. 세상이 밝아
오는 여명 아래 싸리비 자국이 고운 정갈하고 단정한 법당 앞 뜰. 감히 내려서서 밟기는커녕, 그 어떤 홍진도 범접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비함마저 감돌았다. 마음도 늘 이 싸리비로 쓴 뜰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