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노심(老心)
가슴이 뜨끔해도 갈 때가 되었는가
허리가 시큰해도 맘 먹으란 신호인가
창밖의 마지막 한 잎에 매달리는 이 마음
쌓았다가 허물고 칠한 위에 또 개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색 변하는 이 마음
마지막 부칠 편지는 여전히 백지인데
젊은 날엔 몰랐었지 그 바람이 춘풍인 줄
길 가다 스친 소매 그것이 인연인 걸
눈 뜨고 같이 늙어가는 어리석은 이 마음
발길 없는 겨울 호수 갈댓잎만 버석인다
스산히 펼쳐진 허허로운 수면엔
짝 잃은 기러기 한 마리 마음처럼 떠있고.
☆. 근심 걱정 슬픔 불만 궁금함 즐거움 기쁨 그리움 소망 기대 …… 이 모든 것들이 이 나이에도 여전히 제멋대로 들락날
락한다. 가만보니 내가 붙잡고 실랑이하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고 마는 것 같다. 풀씨 하나 땅에 떨어져 싹 틔워
바람에 흔들리고 비 맞으며 꽃피웠다 지고 씨앗 퍼뜨리고 마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참으로 커다란 이 지구의 광활
한 자연 속에 한 개체로 나타났다가 자연으로 살다가 가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사 잊으라, 모두 버리라, 빈 손으로 간다. …….’ 생각해보면 선인들이 하고 가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하나도 틀림
이 없지만, 그게 어디 머리로 이해한다고 바람잘 일인가! 숨이 붙어 있는 한 어쩔 텐가, 제멋대로 들어온 이것들에 일
희일비 휘둘리고 마는 어쩔 수 없는 범인인 걸! 그런 것들에 초연할 수 있다면 노고(老苦)란 무엇이며, 노심(老心)이
춤을 춘대도 바람 한 점인들 스쳐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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