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절가조(時節歌調)

4. 노우(老友)

최길시 2021. 12. 16. 18:33

4. 노우(老友)

 

‘이 몸살 떨어지면 봄 산행 같이 가자’

그 기별 기다리며 귀뚜리와 지새운다

떠난다

한 마디 말도 없이

혼자 먼 길 떠났는가

샘터201312월호에 실림

 

 

 

 

. 동네에 전화가 없던 나의 어린 시절(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어떻게 생긴 건지 본 적도 없었던), 원방의 소식은 편지로,

   급한 일은 전보로, 다급한 일이 생기면 사람을 보내 전해 왔다. 그때는 편지 한 장도 그렇게 반갑고 귀할 수가 없었다.

   설면한 관계의 소식들은 시간이 지나 소문으로 바람에 실려왔다. 그래서 멀리 있는 친척이나 친지들은 무소식이 곧

   희소식이라 했다.

    지구 반대편 먼 외국에 있는 사람과도 시시콜콜히 수다떨며 살아가는 요즈음의 일상으로 보면, 옛날에 답답해 어떻게

   살았을까 하지만, 대화 못해 우울증 걸렸다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삐삐라는 게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참 신기하고 세상 편해졌다고 생각한 때가 그리 오래 전의 얘기도 아닌데, 누구

   나 수중에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으니…….

    요즘엔, 심심찮게 연락해 오던 사람이 며칠만 전화나 문자가 없으면 웬일인가 궁금해지고 공연히 불안해진다. 더구나

   코로나라는 유행병이 창궐하여 하루에도 적잖은 사망자가 생긴다는 뉴스가 어수선한 요즈음은…….

 

    수시로 연락해 오던 친구 하나가 갑자기 한동안 무소식인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일까? 방정스런 생각이 자꾸 들락거렸

   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왜 연락이 없을까 내가 먼저 연락해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이들면 전화 한 통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마음 구석에 뭔가가 걸리는 것들이 왔다갔다 하여 마음이 조그라든다. 도대체 이런 삶이란 뭐란 말

   인가! 하늬바람이 나뭇가지 끝에 소슬한데 해저문 하늘에 까마귀 한 마리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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