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강릉 이모우션(Emotion)
야들아 마카 일루와 쫄로리 서 봐
우리 어머이(꼭지이응'이')가 소꼴기 논고 준대
야이야 니들 퇴냈다 이 어신 때 소꼴기라니
해마두 단오날이믄 남대천 천방뚝에
아주머이가 지져내는 소두베이 감재적
울매나 맛이 좋은지 니따구들이 알겠나
우리 하르버이는 소낭그가 최고래요
소아리 소갈비에 소께이 뜨꺼지까지
앞 등강 보독솔밭도 솝복해서 좋대요
지누아리 장쩨이에 는제이 나물무침
농매갈 감재떡은 다 식어빠지는데
상거두 머하느라 못오나 애거 말러 죽겠네
자아거 따러댕기미 저닷하게 발광하우야
부세이 떨지말고 가마이 좀 못 있나
실공에 개눈까리 달라고 떼꾸렁 쓰는기래요
해목 가면 불가에선 불찜질에 조갑지 줍고
물에 들면 섭 째복에 해오이가 개락이지요
나릿가 재미시러운 일 우떠 다 말하우야
온 죙일 뽁닥양지에서 보리마데이 했더니
까오치가 옷에 붙어 꺼끄루워 죽겠소 야
할머이 털어두 안돼요 오부뎅이 벗어야 해요
(계속)
'이,아'의 '이응'이 꼭지이응(옛이응)인데 컴퓨터로 표기가 안 되어(내 능력이 모자란지도 모름) 색깔로 표기했음.
참고로 백과사전에 있는 꼭지이응(옛이응)의 설명을 간추려 올려놓음.
ㆁ(옛이응,꼭지이응)
훈민정음 28자모 중 한 글자였다. ‘꼭지이응’이라 하기도 한다. 1443년(세종 25)에 훈민정음이 창제될 때부터 1500년대 초기까지 쓰이다가, 17세기에 사라져 현재는 그 자형은 없어지고 끝소리 ㅇ으로 남아 있다.
훈몽자회에서는 지금의 이응을 이(伊), 옛이응을 ᅌᅵ으ᇰ(異凝)으로 불렀다.
『훈민정음』(해례본)의 본문(예의편)에서는 “ㆁ 牙音 如業字初發聲”이라 하고, 『훈민정음』(국역본)에서는 "ㆁ·ᄂᆞᆫ:엄쏘·리니業·ᅌᅥᆸ字·ᄍᆞᆼ·처ᅀᅥᆷ·펴·아·나ᄂᆞᆫ소·리·ᄀᆞ·ᄐᆞ니·라(ㆁ은 어금닛소리이니 業(업)자를 처음 펴서 나는 소리 같으니라)"
발음
훈민정음에 따르면 ㆁ은 어금닛소리로 지금의 받침 ㅇ 소리인 연구개 비음을 나타내는 글자였다. 이는 ㅇ(이응)과 쓰임이 달랐는데, 훈민정음이 처음 쓰였을 때에는 끝소리가 나지 않는 한자를 훈민정음으로 나타낼 때에 항상 ㅇ 받침을 채웠던 것이다. 따라서 한자어가 아닌 “나랏말ᄊᆞ미”에는 ㅇ 받침이 없지만, 훈민정음의 제목이며 한자어인 “솅조ᇰ엉졩 훈민져ᇰᅙᅳᆷ”에는 ㅇ 받침이 들어가 있으며, “셰종어졔 훈민졍ᅙᅳᆷ”으로 읽는다.
ㆁ은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에서 첫 음절의 첫소리로 올 수 있었으나 그 외에는 끝소리와 음절 사이의 첫소리에 쓰이다가 16세기부터 끝소리로만 쓰이게 되었다. 이후에 ㆁ과 ㅇ을 모두 ㅇ으로 쓰게 되었고 원래 받침에 들어갔던 ㅇ은 없어졌다.
자형
훈민정음 해례 제자해에 따르면, 어금닛소리인 ㆁ은 비록 혀뿌리가 후두를 막아 소리의 기운이 코로 나오지만 소리가 ㅇ과 비슷하여 운서에서도 ㆁ이 초성인 의(疑)자와 ㅇ이 초성인 유(喩)자가 자주 섞여 쓰이므로 그 자형을 ㄱ과 ㅋ같은 어금닛소리가 아닌 목구멍소리 글자를 본떠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백과사전에서-
☆. 강릉에서 나고 자라며 자연스레 익힌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학교에서 표준어를 배우는데 거부감이나 부담 같은 것은
없었다. 교직에 나가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더구나 국어교사로서) 힘들다거나 미안하다는 걸 느끼거나 문제
가 된 적이 없었으니, 적어도 한국말에 관한 한 나는 표준말을 사용하는 대한민국의 표준 국민임을 속으로 자부하고
있었다-어쩌다 가끔 사투리가 섞이긴 했겠지만-.
강릉사투리가 좀 색다르다는 말도 듣고 느낀 적은 있어도, 그렇게 다양하고 독특하고 재미난 것인지 소름이 돋도록
느끼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요즘은 잠자리에 들어서라도 문득 떠오르면 머리맡 메모지에 적어놓기도
하고, 이 시조를 쓸 마음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1988년부터 서울 와서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재외국민(주로 재일동포) 자녀들에게 ‘아버지, 어머니,ㄱ, ㄴ,……’ 등 우리
말문을 틔워주고 기초적인 한국어문부터 가르치게 되면서, 내가 사용하는 말이 이들에게는 한국말의 전범(典範)이 될
것이기에, 말에 신경을 쓰게 되고 억양까지도 조심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하는 데도 나를 전혀 모르는 첫대면인 사람
(한국인)과 대화하다 보면 몇 마디 주고받기 전에, ‘당신 강원도지요?’ 라든가, 어떤 사람은 콕 집어 ‘강릉 분이군요.’ 하
여, 놀라움 한편으로 스스로가 매우 실망스러우면서 ‘이게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했다. 그러나 요새는 구애받을 일 없
으니 신경쓰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놓아 말맛이 살아나는 것 같다. 요즘 내 국민학교 동창과 대화하는 걸 누가
옆에서 들으면 참 신기해 하지 않을까?
퇴직 후 시간에 여유도 생기고 내가 쓰던 사투리에 늘 궁금함이 있었던 터라 틈틈이 강릉사투리를 수집해 왔는데, 지
난 해 조선일보사에서 주시경 선생님의 뜻을 이어 ‘말모이’ 사업을 한다기에, 내가 적극적으로 연구할 형편도 아닌 터
에, ‘아, 마침 잘 되었구나’ 하여, 10여년 모아오던 것(1,135개)을 사업팀에 제공하면서, ‘강릉 방언이 이제야 제대로 빛
을 보게 되는구나’ 내심 기뻐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협조를 다했었다. 그런데 『말모이(다시쓰는 우리말 사전)』에 강릉사
투리의 순박한 제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강릉사투리 보존회도 있고, 매년 단오 때면 ‘강릉사투리경연대
회’가 있어 보존에 힘쓰고 있지만, 누군가가 학문적으로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를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순수한 자원들은 날이 지날수록 줄어들어 점점 더 힘들어져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게 좀더 일찍 시간이 주어
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순수한 강릉사투리는, 6.25전쟁이 터지면서 함경도 피난민들의 함경도 사투리가 들어오고, 1960년대 이후에는 시대
가 발달하며 사람들의 내왕이 전국으로 활발해지면서 전국 각지방의 말이 섞이게 되었다. 순수한 강릉사투리는 1950
년대 이전에 나고 자란 사람들이 쓰던 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강릉 사투리는 어휘도 독특하지만. 옛문자 ㆁ(꼭지이
응)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고, 어미의 쓰임과 억양 어투가 다른지방말과 확연히 달라 특이하고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