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기 [홈페이지] | 2011-12-21 18:27:57, 조회 : 853 |
가면에 대하여 생각하다.
* 선생님, 아래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가 제가 2003년에 써 놓은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서 올립니다.
며칠동안 머리가 하얗게 비어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도 쓰고 싶지도 않았다. 약간은 불안하고 반대로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도 있었다. 마려운 소변을 참는 것처럼, 맛난 식사를 위하여 약간의 배고픔을 견디는 것 따위의 그리 무겁지 않은 불안과 그리 버겁지 않은 편안함이었다. 내 자신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비월이를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무슨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오솔길을 돌고나서 천진암으로 향했다. ‘그냥’ 이라는 말이 가장 근접한 단어이고 역시 이유는 없다. 그리고 구보로 한달음에 절반가량을 달렸다. 몇 번 고개 짓을 한 비월이는 예전의 버릇이 나온다. 비월이는 날고 싶은 것이다. 아마 경마장에서는 늘 그렇게 해야만 칭찬을 받았고 직성이 풀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람을 이마에 스치는 정도, 그렇게 안전하고 편안한 승마를 즐기고 싶었지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무모한 경주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삐를 당기며 속도를 줄이자, 비월이는 멈추었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도 비월이를 바라본다.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두 생물 간의 강이 가로놓여져 있는 것이다. 어느 한편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그리고 나는 인간이다.
나나 비월이나 이 행성에서 다 같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나는 의지에 따라 살고 싶은 ‘사람’이다. 비월이에게는 상당히 억울할 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다. 받아 들여라.
가면에 대하여 생각한다. 이것도 나이가 들어서 새로 생겨난 편리한 점인지는 모르지만 대개 사람을 만나면 그의 말보다는 그의 인상과 어투와 악수하는 손에서 신호코드를 꽂은 것처럼 몸으로 읽혀지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스스로의 인격이 완전하다고 믿는 오류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예측 같은 것은 하지말자.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 된다. 나는 결국 그의 첫 번째 가면을 본 것에 불과하다. 상처 많은 세상살이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인지는 모르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세련된 솜씨로 첫 번째 대면용 가면을 쓰윽 꺼내어 내민다. 그리고 화재가 익어 가면, 보다 철학적인 가면, 보다 인간적인 가면, 보다 정직한 가면 등을 하나씩 꺼내어 내민다. 이런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상대방이 꺼내는 가면에 적당이 대처할 가면을 꺼내며 헛웃음이나 그런 것으로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에티켓이니까. 받아 들여라.
대뜸 자신의 호주머니를 흔들며 동전을 쩔렁거리는 사람이 있다. ‘내겐 금전이라는 매력이 있다.’ 라고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간의 관계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르지. 대개는 효과적이었고.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이야기 한다. “어쩌면 한결같이 내 돈에만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당신이 먼저 호주머니를 뒤적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가면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침묵이 금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어떤 말을 하던지 관심이 없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또는 얄 굿은 미소로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사람이 있다. 백 명이 백가지 해석을 내릴 수 있는 미소다. ‘어쩌라고?’ 그렇게 알 듯 모를 듯한 미소와 외면적인 매력의 가면을 여러 가지 꺼내어 놓고 나서 말한다. “왜 나의 내면을 보아주지는 않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에게 내면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치명적인 미소로 사람들을 휘저어 놓고 나서 고양이 같은 태도로 시치미를 떼다니...’ 하지만 이번에도 나의 가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미 어떤 언어도 필요 없는 상황이다.
한 참 바쁘게 가면을 바꾸어 가며 꺼내 놓다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네겐 무엇이 있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는가?’
‘내겐 네게 흥미를 유발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돌보지 않아도 먹고사는 들판의 새다. 그러니 여러 가지 가면을 바꾸어 쓸 이유도 없는 것이지.’
눈앞의 가면은 잠시 당황한다. 대부분은 오늘 우리가 만난 것과 지나가던 개가 전봇대에 오줌을 지린 것과,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게 수많은 가면만을 끝까지 내려놓고 마는 ‘양파타입’의 인간이다. 하지만 가끔 가면 속에서 숨죽인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와 내겐 내일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가면 없는 맨얼굴로 이야기할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도 가진다. 약간의 희망을 지닌 채 달랑 한 개뿐인 가면을 거둔다. 받아들여라.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알지 못할 ‘룰’이 우리를 가면 뒤로 숨게 만드는 것이다. 상대방이 대강은 내 가면을 짐작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누구도 숨 가쁜 가면 내밀기를 멈추지 않는다. ‘혹시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몰라.’ 설마...
‘거 되게 있는 척하더군.’, ‘웃고는 있지만 만만치 않은 사람이에요.’, ‘엄청 오버 하는군.’, ‘바람둥이 아니야?’ 오늘 우리가 읊조린 낮은 목소리의 독백들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가면 따위는 바라보지도 않고 가면 속의 얼굴에 대하여 끊임없이 상상한다. 보이는 것은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온갖 추론을 가동하는 것이다.
개구리 소리가 창을 넘어 작은 방안을 점령한다. 그리 길지 않은 동안에 대면한 수많은 가면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두 행성 간의 깊은 강이 가로놓여져 있다. 어느 한편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그리고 나는 인간다운 인간, 가면 따위가 필요 없는 인간이고 싶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쩌지?’,
‘받아들여’
들녘의 고요한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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