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 2008-06-24 09:31:14, 조회 : 1,010 |
<한국인의 애송 동시>
구 슬 비
권 오 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포슬포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어떤 사람에겐 시를 쓰는 것이 자신의 불우를 견디는 힘이 된다. 이 시를 쓴 권오순(1919~1995)의 경우가 그러하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되었다. 몸이 불편한 그녀가 택한 길은 시를 쓰는 것. 1933년 《어린이》지에 〈하늘과 바다〉가 입선되기까지 그녀는 학교에 가지 않은 채 혼자 집에서 창작에 전념한다. 1937년 《카톨릭소년》에 발표된 이후 그녀의 대표작이 된 이 시는 그 과정의 산물이다.
비가 내린다. 싸리잎에도, 거미줄에도, 풀잎에도, 또 꽃잎에도. 이 비는 장대처럼 쏟아지는 소낙비도 아니고, 감질나게 내려앉는 보슬비도 아니다. 그것은 '포슬포슬' 내린다. 비 내리는 바깥을 마음껏 돌아다녀보지 못한 소녀가 그 비를 바라본다. 소녀는 비를 맞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소녀에게 비는 다만 영롱한 구슬처럼 반짝일 뿐이다. 비는 '송송송' 내리고 '솔솔솔' 맺힌다.
국민학교 3학년 음악교과서에 2부합창곡으로 실려있던 이 노래! 파트별로 연습하면 잘 되던 것이, 합창을 하면 어느 틈엔가 합쳐져 버려 애를 태웠었다. 장마 지던 이 무렵에 가르치도록 편성되어 있었던 모양으로, 이 노래를 배우는 날 창밖에서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분위기에 괜히 들뜨던 이 노래!
나는 그 때, 이 곡의 작사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아니, 교과서에 작사, 작곡자가 나와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기억이 없다). 이 탱글탱글한 노랫말에, 작사자의 모습이 겹친다.
'(2021.9.이전)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흔들리는 마음' -임길택- (0) | 2021.10.10 |
---|---|
편지 (8) | 2021.10.10 |
'강물' -정호승- (2) | 2021.10.10 |
'봄편지' -서덕출- (0) | 2021.10.10 |
'뺄셈 공부' -윤기호- (3) | 2021.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