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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이야기

최길시 2021. 10. 3. 13:37
글쓴이 kilshi 2006-11-20 14:19:32, 조회 : 2,195

 

 

내가 자작나무에 대하여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정비석씨의 기행문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였다(강릉지방의 야산에서는 자작나무를 보기 어려웠었기 때문).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해선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으로 시작되는 그 글은 구절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명문으로, 우리 때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대학입시에 단골로 출제되는 단원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입시공부를 하며 '훈민정음 서'와 ‘기미독립선언문’ 전문, 그리고 ‘용비어천가’ 와 이 ‘산정무한’의 자주 출제되는 부분을 통째로 외우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글의 자작나무가 나오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였다. 설 자리를 삼가, 구중 심처(九重深處)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樹中) 공주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哀話) 맺혀 있는 용마석(龍馬石) ── 마의 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능(陵)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 ── 철책(鐵柵)도 상석(床石)도 없고, 풍림(楓霖)에 시달려 비문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그리고 ’87년 서울로 이사와, 가난한 선생 봉급에 갈 데 없는 주말마다 애들을 데리고 대모산엘 올랐는데 그 산에 이 자작나무가 많았다. 나는 몇 번인가 분재로 하려고 파다 화분에 심었는데, 구중심처가 아닌 속(俗)에서는 살지 않겠다는 이 나무의 절개 때문이었던가, 끝내 실패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동호의 ‘이명희’도 이 자작나무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던가, 아니면 자작나무에 얽힌 아름다운 사연이 있었던가, 게시판에 올려놓은 자작나무 시를 보았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도 자작나무에 대해 쓴 글(아래)이 있다며……. 전화 너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문득 두 모습이 오버랩되며 그녀와 자작나무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영화 닥터 지바고를 기억하시는지요?

흰 나무들 사이로 마차를 몰고가는 오마샤리프의 우수에 젖은 내면연기가 돋보였던 영화....

새하얀 수피와 시원스럽게 뻗은 키가 인상적이어서 숲속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자작나무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불이 잘 붙고 오래가므로 촛불이나 초롱불 대신에 불을 밝히는 재료로 애용되었으며 혼인하는 것을 화혼 또는 화촉(樺燭)을 밝힌다고 하는데, 이 단어의 ' 화 '가 바로 자작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작나무란 이름도 껍질이 탈 때 기름성분이 많아서 ' 자작 자작 '하는 소리가 나는데서 따왔다.

 

자작나무 아래서 태어나 자작나무 숲에서 놀다 자작나무 아래로 돌아 간다는 러시아인. 자작나무는 러시아의 국목이자 가장 흔한 나무다. 러시아에는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를 쓰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담이 있다. 얇게 벗겨지는 자작나무 껍질에 사모의 마음을 담아 띄운 연서... 그 편지를 받고 감동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경주 천마총에서도 자작나무 껍질에 글과 그림을 그린 유물이 출토됐다고 한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이 나무와 박달나무로 만들어졌다. 이는 방부제가 들어있어 잘 썩지 않고, 곰팡이도 피지 않으며, 물도 잘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리라.. 요즈음에도 러시아에서는 자작나무 껍질로 명함을 만드는 멋장이들이 있다고 한다.

 

핀란드식 사우나탕에서는 잎이 달린 자작나무 가지로 팔, 다리, 어깨등을 두드리는데 이는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고 한다. 플라보노이드, 자일리톨 같은 껌제품도 이 나무로부터 나온 것으로 이외에도 우리나라 쑥이나 솔잎처럼 민간약으로 흔하게 애용되고 있다.

 

자작나무는 그렇게 껍질을 벗으면서 제 몸을 키우고, 더욱 통통하게 살찌울 뿐 만 아니라 더욱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일생동안 껍질벗기를 시도하다 결국 한 껍질도 못벗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한하면서 넘어서게 되지 않을까...

 

" 수많은 이들이 만났어도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수많은 이들이 사랑했어도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 있다. " 나무를 노래한 시의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나무는 오직 기다림을 안고 산다.

결코 누군가를 찿아 나서지 않는다.

아무리 그리움이 깊어도 오직 기다릴 뿐이다.

그 기다림의 연륜을 가슴 깊은 나이테에 그려 놓고 애절하게 품고 살아 간다.

사라지고 변하는 것 투성이인데

나무는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준다.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더 넓은 가슴으로 나를 맞아준다.

마음에 심겨진 나무를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래서 그리움의 장소, 사랑의 장소에는 나무가 있나 보다.

사람들은 그 나무 옆에서 그 사랑과 그 감동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영화 속의 그 나무를 찾아 사람들은 오늘도 집을 나서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