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 2006-07-27 09:04:52, 조회 : 1,825 |
‘슬픔’이라는 것도 각 개인의 주관적인 것이어서, 사람에 따라 슬픔을 느끼는 대상이나 정도가 다른 것 같고, 그것을 감내하고 표현하고 승화시키는 방법도 다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희로애락에 물들지 않고 인간사를 초월하는 고고한 삶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희로애락을 느끼며 그 때마다 희희, 노로, 애애, 낙락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감정도 살아온 세월에 시달려서인가 나이가 들수록 무뎌지는 것 같다.
슬픔의 실체는
Each substance of a grief hath twenty shadows,
Which shows like grief itself, but is not so;
For sorrow's eye, glazed with blinding tears,
Divides one thing entire to many objects.
(Richard II 2.2.14-17)
슬픔의 실체는 하나이지만 그 하나는 스무 개의 그림자를
갖고 있어 그것들이 죄다 슬픔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슬퍼하는 눈은 눈물에
흐려져 있어서 하나가 여러 개로 보이는 것이지요.
(『리처드2세』2막2장 14-17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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