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고맙습니다
출석했던 여러분
내가 안고 온 교직 인생의 끝자락을 마무르는데
멀리서 새벽 비행기까지 타고
달려와 준 여러분
고맙습니다
무엇이 무슨 힘이 그 먼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게 했으며
무엇이 무슨 힘이 그런 소탈하고 진지한 마음이 되게 했을까
생각해도, 생각해도
그건
각자 살아온 수레바퀴의 톱니에서
인연의 끈이 되었던 사제의 정이었겠지요
사제의 정!
나는
나, 가족, 시간, 미래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나름으로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귀한 시간 먼 길 달려온 기대만큼의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묻혀있던 작은 싹 하나라도 틔웠기를 바랍니다
누군가가
행사를 치르고 난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한 과정의 담담함과 감사일 텐데
돌아보니 다하지 못한 무엇이 남아 있는 듯도 하고……
그러나 역시
숙제를 제출하고 난 후의 후련함이랄까
여러분
각자의 길 위에서
삶에 대한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건강하십시오
즐겁게 사십시오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사십시오.
(2006.2.11.)
☆. 행사를 기획할 때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떠올렸었다. 아멜 선생님이 쓰러질 듯이 칠판 앞으로 다가가 마지
막으로 쓴 ‘프랑스 만세’를 생각했고, 그 수업이 평생 마음속 상처로 남았을 프란츠 소년을 생각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단절에 대한 미련이 매달려 와 짠함을 느끼게 되고, 나중에 머쓱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
는 일이어서 가급적이면 이 말은 묻어두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마지막’은 피할 수 없는 내 인생의 숙명 같은 것
이었기에 우물쭈물 숨기고 넘어가기보다 드러내 획을 긋는 것이 옳은 일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내 생애의 흐름에서 헤어나려고 열심히 발버둥쳤지만 끝까지 교단이 나의 생활 터전이요 무대였고 나의 존
재 이유가 되었던 교직. 2006년 2월11일 토요일 10~12시의 수업. 1961.3.31.~2006.2.28. 44년 11개월.
장소 때문에 70명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웠지만, 큰 장소를 빌려 시끌벅적 하기보다 단촐하게 잘 마무
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제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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