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시(詩)

30. 기다리는 심정

최길시 2022. 5. 24. 10:18

30. 기다리는 심정

 

성난 파도에 뒤채이며

다가올 듯 오지 못하는

먼 바다 위 가물한 돛배 그림자

 

전선 이동 군사우편

한여름 폭우 속에 받았는데

눈 내려도 오지 않는 우체부 자전거

 

창호지 문구멍에

깜박이지도 않는

눈물 그렁한 아이의 눈망울

 

마당질하다 허리 들어

연신 사립문께 내다보는

산골 오두막 노파의 굽은 등

 

흔들리는 촛불 아래

홀로 앉은 식탁 위

맞은 편 가지런히 놓인 수젓가락

 

비 내리는 늦은 가을밤

아니 오고 인적은 끊어졌고

마지막 열차의 기적소리

 

벽시계가 열두점을 친다

화로의 잿불 위에

식어가는 된장 뚝배기

 

눈을 감는다.

 

 

 

 

. 새벽같이 눈 비비고 일어나 일터로 나가, 밤 늦게 들어와 발도 못 씻고 잠자리에 들던 시절에는 눈앞에 닥친 일에 묻

   혀 외로움이든 기다림이든 비집고 들어앉을 자리가 없었다. 궁핍으로 찢어진 생활 이곳저곳이 펄럭였어도 마음은 늘

   한가득으로 복잡하여 한치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올 이도 가야할 일도 없어 들어앉아 있으니 종일 허허하여 눈은 연신 창밖으로 나가는데, 무언가 해야 할 일을 잊고

   있는 듯하여 초조와 불안이 수시로 스쳐 안온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고 얼굴을 들이밀 것 같

   아 들뜨고, 앞에 놓인 핸드폰을 하릴없이 만지작거리고……. 창밖엔 또 바람이 지나가나 보다.

 

     지나간 일들은 뜬금없이 되살아 나와 그리운 사연들이 순서도 없이 밟힌다. 어느 누구의 삶이라고 별다를 리 있겠는

   가마는 끝나는 날까지 이렇게 부지할 것 같은 생각에 살아간다는 것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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