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기다리는 심정
성난 파도에 뒤채이며
다가올 듯 오지 못하는
먼 바다 위 가물한 돛배 그림자
전선 이동 군사우편
한여름 폭우 속에 받았는데
눈 내려도 오지 않는 우체부 자전거
창호지 문구멍에
깜박이지도 않는
눈물 그렁한 아이의 눈망울
마당질하다 허리 들어
연신 사립문께 내다보는
산골 오두막 노파의 굽은 등
흔들리는 촛불 아래
홀로 앉은 식탁 위
맞은 편 가지런히 놓인 수젓가락
비 내리는 늦은 가을밤
아니 오고 인적은 끊어졌고
마지막 열차의 기적소리
벽시계가 열두점을 친다
화로의 잿불 위에
식어가는 된장 뚝배기
눈을 감는다.
☆. 새벽같이 눈 비비고 일어나 일터로 나가, 밤 늦게 들어와 발도 못 씻고 잠자리에 들던 시절에는 눈앞에 닥친 일에 묻
혀 외로움이든 기다림이든 비집고 들어앉을 자리가 없었다. 궁핍으로 찢어진 생활 이곳저곳이 펄럭였어도 마음은 늘
한가득으로 복잡하여 한치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올 이도 가야할 일도 없어 들어앉아 있으니 종일 허허하여 눈은 연신 창밖으로 나가는데, 무언가 해야 할 일을 잊고
있는 듯하여 초조와 불안이 수시로 스쳐 안온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고 얼굴을 들이밀 것 같
아 들뜨고, 앞에 놓인 핸드폰을 하릴없이 만지작거리고……. 창밖엔 또 바람이 지나가나 보다.
지나간 일들은 뜬금없이 되살아 나와 그리운 사연들이 순서도 없이 밟힌다. 어느 누구의 삶이라고 별다를 리 있겠는
가마는 끝나는 날까지 이렇게 부지할 것 같은 생각에 ‘살아간다는 것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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