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황혼, 그 기막힌 순간을 지나며
살기 위해
죽을 각오도 했다
그땐
꽃밭도 바다도
죽기살기로 악다구니 치던
진흙밭.
별도 없는 밤 길
빛이란 오직
내 마음의 노래
밀리고 차여도
서럽고 두려운 게
무엇이 있었으랴.
이제는
죽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해야 할 때
홀로 걷는 허허한 벌판에
부를 노래가 없다
들어줄 누군들 있으랴.
노을 지고 땅거미 내리는데
어제가 아쉽고
오늘이 서럽고
내일이 적막하여
독백하는
황혼길의 방담(放談).
☆. 『황혼, 그 기막힌 순간을 지나며』의 머리글.
황혼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처절한 아름다움이다. 황혼이 아름다운 건 아주 짧은 순간의 황홀함 때문일 것이다.
모든 아름다움이 다 그렇듯. 꽃이 그렇고, 일출 일몰이 그렇고, 구름이 그렇고, 미인단명(美人短命)이 그렇고, 행복이 그
렇고 ……. 아무리 맛있는 음식일지라도 계속 먹으면 식상해지듯, 기막힌 아름다움일지라도 자꾸 보면 시들해지니까.
인생의 황혼도 너무 길면 아름답지도 대견하지도 않다. 밖에서 보기에 경이로울지 모르나 곧 스러질 색깔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모두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맥없이 긴 황혼보다 잠깐 사방을 환히 비추고 스러지는 섬광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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