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시집/단가(短歌). 하이쿠(俳句)·센류(川柳)

5. 홍련암에서

최길시 2022. 2. 27. 09:05

 

5. 홍련암에서

 

처얼썩 솨아

천년을 염불하는

파도의 기도

파랑새 부르는가

푸른 저녁 종소리

 

 

 

 

☆. 바다는 내게 그리움이요 아픔이요 희망이었다. 그 바다가 늘 그 자리에 그렇게 같은 자세로 있어주어 나는 안심할 수

   있었고, 파도소리를 아파할 수 있었고, 그 너머를 동경할 수 있었다.

   검푸르게 가없이 펼쳐진 바다! 바다를 좋아한다는 어느 제자가 언젠가 이런 글을 보내온 적이 있었다.

 

‘오래 보지 못했던 철 지난 고향 앞바다에 가 보았습니다. 여름철 내 사람들에게 내어 주고 가까운 산속에서 지내고 돌아온 갈매기들, 어지러운 그림자를 피해 먼 바다로 밀려나갔던 착한 물고기들이 돌아와 있었고, 광란의 발길에 채여 상처투성이던 모래밭도 다독여주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다시 편안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바다는 읽을 수 없는 푸른 책 같습니다. 하늘을 향해 열린 그 커다란 눈에 내 눈을 맞추려고 하는 일이란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조용히 일렁이고만 있는 듯한 수면 아래 바닷속은 또 얼마나 알 수 없는 세계인지……. 위는 환하고 아래는 검은 우리네 생각의 수면을 생각했습니다.’

 

    그 바다 한쪽 모서리에 홍련암이 수줍은 듯 기대 있었다. 파도의 기도 소리를 안으로 안으로 받으며 홍련암을 그렇게

  말없이 천 년을 서 있었다. 파랑새가 붉은 연꽃을 찾아 떠난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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