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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주천 '젊은 달' 개관

최길시 2021. 10. 30. 10:24
글쓴이 kilshi [홈페이지] 2019-06-15 11:55:49, 조회 : 526

 

속이 썩은 줄 모르고 번드레한 겉만 보고 믿고 매달렸던 가지가 부러지며 곤두박질친 상처의 아픔보다는, 가슴을 통째로 뚫고지나간 배신과 허망이 더 견딜 수 없었다.

파리 목숨 같았던 6.25 전쟁 통에도, ‘눈 뜨고도 코 베어간다던 악다구니의 5,60년대를 살아오면서도, 말도 원활하지 않고 물정에도 서툰 10년의 해외생활에서도 그런 적이 없었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황당하고 저주스러울 수 없었다.

어느 지인이 말하기를,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에 그런 일 한번쯤은 당하는 일인데, 당신은 운이 좋아 잘 피해 오다가 뒤늦게 당한 거지요하던 말로 위안을 삼고 묻어버리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숙취로 속이 뒤집혀 계속 올라오는 헛구역질 같은 울화를 억제할 수 없는 나날이었다.

강릉대 최옥영 교수에게서 젊은 달개관 초대 카톡을 받고, 상황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물었더니,

영월군에서 설립하여 관리 운영해 오던 酒泉술샘박물관이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해, 변신 의뢰를 받아, 젊은달 YOUNGWOL. Y. PARK'로 개관하게 되었다.” 는 것이었다.

언젠가 내가,

작업이나 작품 의뢰가 오면, 귀찮은 일이더라도 튕기거나 거절하지 말고 맡아 성심껏 하라. 일도 때가 있는 법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하고싶어도 일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해 준 적이 있었지만, 지역으로 보나 거리로 보나 맡을 일이 아닌 것을 무리해 벌여놓은 일이 아니었을까 의문이 일었다.

좀 큼지막한 작품전시실을 배당받아, 주기적으로 작품들을 교환 전시해 주도록 부탁받은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추측해 보면서, 축하 화분도 그 상상에 맞추어 주문해 보냈다. 억눌하고 답답한 차에 바람이나 쐬고 올 생각이었다. 내가 잘 이해하기 힘든 현대 추상 작품만이라면 감동은커녕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하는 심드렁한 기분도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론, '주천면 무릉도원'이란 깊은 인연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지명을 알게 된 지 40여년이 넘었는데, 여태 잊히지 않고 구름처럼 떠도는 아련한 추억이, 이런 우연찮은 행사를 계기로 조우하거나 남은 생애에 연결고리가 되라고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기대도 있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었지만 오순도순하고 포근한 시골의 정경은 아니어서 동네를 어슬렁거려볼 심산을 포기하고 곧바로 행사장으로 갔다.

미술전시관 정도가 아닐까?’ 상상했던 나는 입구에서부터 설치된 작품의 의도와 규모에 압도되어버렸다. 개관식 이전부터 하는 퍼포먼스며 짜임새 있게 진행되는 개관식, 그리고 언제 몰려들었는지 예술가풍의 활기넘치는 관객들, 설치 전시된 작품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나는 입을 벌린 채 그저 사진 찍기에만 바빴다(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사진도 다 못 찍고 퍼포먼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았지만)

사실 젊은 달에 설치, 전시된 작품에 대하여는 설치미술에 대한 지식도 없고, 그 감동을 뭐라고 글로 쓸 능력도 모자라, 이 글을 읽는 사람은 한번 현장에 직접 가 느껴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최옥영과 오랜 친분이 있다는, 관료 냄새를 풍기지 않아 진솔해 보이는 문체부 차관에게 내 솔직한 감동을 얘기했다. “제자인 최옥영교수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걸 미리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오늘 이 젊은 달을 보고 존경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스페인에 가면, 바르셀로나의 가우디를 보아야 한다면, 이제 한국에 오면 강릉과 주천의 최옥영을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에게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창의가 넘쳐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형상화하도록 해 주는 데는 여러분들의 힘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계속 많이 도와주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상업미술을 가르치며 최옥영의 미술활동을 적극 이끌었던 옛동료 홍윤호선생과, 여러 제자들과 조우했다. 돌아오는 길은, 졸업 후 40년 만에 만난 정진만의 차 속에서, 담임이었으면서 낌새도 채지 못했던 그의 지난했던 가정사와 학창시절의 고생담을 들으니, 담임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 년 전, ‘하슬라아트월드를 돌아보며 그의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희미한 안개 같은 의구심이 있었는데, 젊은 달의 기획과 설치된 작품에서 경이와 감동을 느끼면서, 그때는 내가 작은 창구멍으로 들여다 본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힘을 가지고 태어날까? 옥영이처럼 가지고 나온 그 이상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도 펴지 못하고 스러지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다른 누가 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오롯이 본인 스스로 해 나가야 할 몫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치란, 세상에 태어나 숨을 놓는 순간까지 스스로 최선을 다해 잠재된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해 내는 것이 받은 목숨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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