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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와 초당에서 묵다(與山人普應下山, 至豐巖李廣文家, 宿草堂)' -이이(李珥)-

최길시 2021. 10. 27. 07:45
글쓴이 kilshi [홈페이지] 2014-06-14 10:05:36, 조회 : 884

 

 

산을 내려와 초당에서 묵다

                   -이이(李珥·1536~1584)

도를 배운다는 것은 집착이 없다는 것

인연이 되는 대로 여기저기 노닐련다.

푸른 학이 사는 골짜기를 선뜻 떠나

흰 갈매기 나는 물가에 와 구경한다.

천리를 떠도는 구름 같은 신세로

바다 한 귀퉁이 하늘과 땅에 서 있다.

초당에 몸을 맡겨 묵고자 하니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류로구나.

 

 

與山人普應下山, 至豐巖李廣文家, 宿草堂

 

學道卽無著 (학도즉무착)

隨緣到處遊 (수연도처유)

暫辭靑鶴洞 (잠사청학동)

來玩白鷗洲 (내완백구주)

身世雲千里 (신세운천리)

乾坤海一頭 (건곤해일두)

草堂聊寄宿 (초당요기숙)

梅月是風流 (매월시풍류)

 

  율곡(栗谷) 선생이 스무 살 때 삶에 회의를 느껴 머리를 깎고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산을 내려왔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풍암(豐巖) 이광문(李廣文) 초당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다. 그는 자문자답한다. 왜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가? 도(道)를 배우는 것은 집착이 없는 것, 한곳에 머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져 있지도 않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인연이 있다는 것뿐이다. 오늘 잠시 동해안 바닷가 이 초당에 묵고 있다. 매인 데 없는 구름처럼 내일이면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매화나무 가지에 비친 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청년의 방황과 패기가 행간에 스며 있다.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한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