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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 -구본형-

최길시 2021. 10. 26. 07:13
글쓴이 kilshi 2013-08-17 13:17:46, 조회 : 1,074

 

 

-어제보다 아름다운 오늘을 살고싶은 그대에게-


1.잡다한 일로 꼭 하고픈 일을 못하는 P에게 =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은, 즉흥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때때로 살아
지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반응하는 것이 더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지만 그것 때문에 나의 내면의 규율과 북소리
가 꺼지는 것은 아니다. <맹자>에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이란 말이 나온다. ‘물이 흐르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
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기억해라. 너를 잡다하게 써 낭비하지 마라. 너를 딱 맞
는 네 일에 집중해서 쓰도록 해라. 그리하여 오래 그 일을 배우고, 좋아하고, 이윽고 그 일로 먹고살고 즐길 수 있는
통달한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

2.세계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앞둔 B에게 = 두려움은 틀림없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흥분과 다른 것이 아니
다. 막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불안은 오히려 본질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나팔수들이다. 여행의 막바지 일정을
네 미래로 가득 채우기 바란다. 꿈은 미래를 지향하고 마음은 현재의 살아있음을 감지할 때, 삶은 올바른 방향으로
지금을 음미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 인생을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채우는 일, 그 일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
겠느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인 것을.

3.Y에게, 젊음은 미리 늙지 않는 것이다 = 사건은 크기가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전해지는 깨달음의 크기가 인생을 바꾸
는 것이라네. 젊음은 젊음으로 인생에 기여한다네. 너무도 쉽게 늙지 말게. 위대한 것이 그대의 가슴속에서 자라나
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주와 공명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그 일'을 반드시 해 내게.

4.결혼을 앞둔 J를 위하여 = 인간은 결국 두 종류로 대별된다고 생각하네. 한 종류의 인간은 실제적이고 본능적인 동물
적 인간이라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신성한 잉여의 아름다움'이라는, 유혹에 민감한 인간적인 인간이라네. 인간은
실제 필요에 충실한 동물적 인간성과 잉여의 신성한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인간성을 한
몸 안에 모두 가지고 있다네. 결혼은 이 두 가지 속성이 생활의 공간에서 적나라하게 부딪히고 조화되는 삶의 현장
이라고 생각하네. 그러니 나는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네. 하나는 싸움을 잘하라는 것이네. 부딪히지 않고는 조화할
수 없다네. 또 하나는 결혼을 통해 서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네. 서로 상대방이 그 사람의 길을 잘 가도록 가장 훌
륭한 스폰서가 되어주는 것이라네.

5.남자 고르는 법에 대하여, 사랑에 빠진 L에게 = 일단 사랑에 빠지면 지혜는 멀리 사라져버려 그때는 이미 어떤 조언
도 필요 없을 테니 남자 고르는 법을 말해 두려 한다. 첫번째 절대적 기준은 '착한 놈이 좋은 놈'이라는 것. 착하다
는 것은 일종의 지능이니까. 두번째 기준은 '가슴이 따뜻한 훈남'. 사나이답다는 것에 유혹되지 말라는 것. 마지막
기준은, '자신의 재능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남자' 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그로 인해 내가 크게 돋보이고, 마음의 목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너를 자신보다 아껴 사랑이 빛나게 하며, 스스로 가장 잘 하는 것으로 유혹할 수 있는 남자는
사귀어 깊이 빠질 만하다.

6.제발 떠나게, 일밖에 모르는 M에게 = 낡은 자네에서 벗어나 50년 만에 새로운 제3의 인생을 획책해 보게. 그 동안 반
은 학생이고 또 반은 직장인이던 그대가 올해는 터닝 포인트를 계획하는 대장정에 오르길 바라네.

7.생전 처음 쓰는 아버님 전상서 ----- '여태 한 번도 써 본 기억이 없는 사람들은 지금 이 기회에 한 번 이라도 써 보기
바란다.'

8.졸업을 앞 둔 S에게, 직장 구하는 법에 대하여 = 나는 네가 어느 길을 가든 응원할 것이다. 제 길을 간 인생 만이 행복
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원칙을 알려줄 테니 네 취향에 맞게 변형하여 써 보도록 해라. 첫째, 취업은 과거의 기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 그리고 재능을 파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정보가 몰려 있는 곳에만 집중하지 말고 시선을 다양하게 돌려 찾아다녀야 한다. 셋째, 아주 강력한 자
기 소개서를 써 두어라.

9.좋은 사장이 되고픈 H에게 = 삶이 인생의 전부입니다. 그러니 매순간 살아있어야 합니다. 삶은 과거처럼 이미 결정
된 것도 아니고, 미래처럼 머릿속에 정형화된 완벽도 아닙니다. 삶은 지금이며, 생명의 출렁임이며, 거친 호흡이며,
구름처럼 불완전한 끊임없는 변이입니다.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10.신이여 저를 다 쓰소서 =
저를 힘껏 당기소서.
부러질 것 같아 두려워 하더라도
저를 당기소서.
받은 것을 다 소진하고 당신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저를 남김없이 다 쓰소서.
그리하여 저의 모자람에 절망하게 하소서.
그러나 당신께 절망하지 말게 하소서.

저는 또한 제 길을 열심히 가겠습니다. 그것이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주신 재능을 다 쓰고, 제게 맡기신 이
세상에서의 역할을 마다 않고. 당신이 주신 재주를 남김없이 다 발휘하여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희망을 갖도
록 돕겠습니다.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고, 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
는다’ -파스칼-

11.나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 내 속에는 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살고 있었으니.... 너와 나는 서로 대립되는 쌍이었
지. 네 말대로 나는 가면이고 너는 진짜 내 얼굴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나는 너를 비처럼 받아들여 흠뻑 젖을 것이
다. 너는 나를 나무처럼 춤추게 하라. 그리하여 우리는 비 온 뒤의 숲처럼 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