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기 [홈페이지] | 2011-12-27 01:19:33, 조회 : 850 |
라면 단상
이른 아침, 혼자 라면 발을 건지다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 ‘나’라는 존재의 정의는, 내가 지닌 작은 명예, 재산, 자동차, 문화성향 이런 것이 아니라, 지금 나와 마주앉은 이 한 그릇의 라면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내 앞의 라면이 나의 현재와 미래의 행복마저도 판가름 짓는, 바로 나 자신 아닐까?
이 식사는 내 몸에 들어가 곧 내 육신이 되는 것이니, 이 한 그릇의 라면은 나와 물아일체(物我一體) 내가 곧 라면이며, 라면과 나는 거울처럼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서민의 생활’이라는 까마득한 절벽을, 라면이라는 외줄다리로 아슬아슬 건너 간신히 내일로 나아간다.
사내가 철든다는 것은 밥맛을 알아간다는 뜻이고, 밥벌이의 막막한 불안을 깨닫는 것이고, 함께 밥을 먹는 식구(食口)의 참 의미를 알아간다는 것. 그래서 나는 가족보다도 식구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는다. 책임진다! 는 말은 오직 밥벌이 가능한 사내만이 입에 올릴 수 있다.
매번, 라면 그릇 앞에 앉으면 '예쁜 마누라는 헤어질 수 있어도, 음식 솜씨 좋은 아내는 헤어지지 못한다.'는 옛 말씀이 반드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 새벽, 내가 구부정하게 엎드려 건져 올리는 것은, 라면이 아니라 밤새도록 고아낸 지독한 고독의 뼈다귀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바로 이 행성에서 정확한 내 위치일 수도 있겠고.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판을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 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넣어주는
먹는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한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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