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기 [홈페이지] | 2011-12-14 01:17:39, 조회 : 972 |
[뉴시스아이즈]칼럼 '김명기의 목장통신'-'말썽'의 어원
기사등록 일시 [2011-12-12 11:48:29]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11212_0009977512&cID=11210&pID=11200
서울=뉴시스】일을 마친 말들이 마방에 느긋하게 누워 있다. 새로 깔아준 톱밥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사료와 알팔파, 티모시 건초를 배불리 먹고는 세상사가 다 귀찮아진 표정이다. 그런데 갑자기 마방 벽을 차는 소리가 들린다. 말이 뒷발로 차는 힘은 약 4톤으로, 지프차가 넘어갈 정도라고 하니 가만 두면 벽이 뚫리거나 무너질 것이다. 아니라면 제 스스로 발을 다쳐 퉁퉁 붓고 고생할 것이다. 그래서 마방은 ‘축벽(kicking board)’이라고 하는, 원목 자재 같은 것으로 말이 뒷발로 차도 다치지 않도록 시공한다.
“어느 놈이냐? 조용히 못해!”
일순 마방 전체가 조용해진다. 말들은 내 음성을 잘 알고 있다. 착하고 온순한 말을 다룰 때의 내 가식적으로(?) 부드러운 음성과, 힘이 차서 난폭해진 말을 순치할 때의 내 기세와 분위기를 이해한다. 말은 겁이 많고 온순한 동물이다. 누군가가 공격을 하거나, 스스로 공격당할 것이라고 예상될 때만 대응한다. 그런데 참 어이없는 것이, 비닐봉투가 날리거나, 자기 그림자에 놀라서 가끔 날뛴다. 들판에 묶인 말이 풀을 뜯다 앞발에 밧줄이라도 걸리면, 혼자 풀지 못하고 부상을 입을 정도로 발광하는 것이다. 부산 지방의 어떤 말은 밧줄이 성기에 걸려 성기가 부러졌다. 몸 밖으로 반쯤 나와서 도로 넣지를 못하고 평생을 살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란 종족은 도무지 참을성이라고는 없다.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별 것 아닌 일에 민감한 반응으로 자신과 주위를 힘들게 만든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야생마 부케팔로스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흥분한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챘고, 그림자를 보지 못하도록 말 머리를 태양 쪽으로 돌리고는 부케팔로스를 길들여 올라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부케팔로스는 그때까지 누구도 올라타지 못한 사나운 야생마였다.
예전에 말들이 실려 있는 ‘말차’에 심술궂은 한 꼬맹이가 작은 돌멩이와 태권도복 띠를 던졌다. 어디나 말썽꾸러기는 있다. 말들은 그 작은 돌멩이와 띠에 놀라 날뛰다가, 말차의 강철로 된 칸막이를 다 부수고, 자신도 온통 다쳤다. 참 말썽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말썽’의 어원을 조사해 보았다. 조선시대 마필 관리의 기록인 찰방해유(察訪解由)에 따르면, 말썽은 말이 성질을 부리는 것, 사소한 일을 문젯거리로 만드는 것으로, 말이 성질을 부리는 것처럼 괜스럽고 어이없는 일에 대한 표현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임금님이 적장 용골대의 군사에 의해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을 때다. 임금님은 깊은 밤 근심으로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겨울 하늘의 조각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밤의 정적을 깨고 쿵쾅 거리는 소리가 났다. ‘기습인가?’ 당장 일직 내관을 불러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린고?”
“네, 말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사옵니다.”
“말들이? 왜 무슨 일로?”
“겨울바람 소리에 놀란 모양입니다.”
“허어, 말들은 성질이 고약하구먼, 말 성질이라니…. 말썽이네….”
이 같은 고사에서 말썽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역시 5000년 기마민족인 우리나라다운 결론이다. 지금까지 호오, 과연…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분들껜 몹시 죄송하다. 말을 키우며 말썽을 부리는 말들을 보니, 갑자기 말썽이란 말은 말들이 성질을 부리는 어이없는 일에서 생겨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 거짓말이다. 그러나 아니라는 증거 문헌도 없다. 지금은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깊이 연구하면 사실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웃자고 한 농담에 죽자고 덤벼드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어쨌든 말이라는 동물을 이해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찰방해유(察訪解由)는 정말로 존재하는 책이며, 조선시대 역참(驛站)의 기록이다)
새벽 1시30분. 어머님께 문자가 왔다. 올해 나이 70세, 어머님은 놀라운 분이다. 적어도 내 형제와 아버님에겐 그렇다. 70세의 어머님이 나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 놀라운 게 아니다. 어머님은 평소 저녁 10시를 못 넘기고 주무시는 분이다. 평생을 새벽 4시면 일어나 뭔가 일을 시작하신다. 유년의 나는 어머님이 부엌에서 뭔가 아주 조심스럽게, 작게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저녁 10시가 넘으면 어머님은 잠 때문에 거의 만취한 사람의 모습이 되신다. 그런데도 일 년에 몇 번. 명절 빼고는 거의 고향집을 찾지 못하는 큰 아들과 몇 마디라도 더 나누기 위해 필사적으로 잠을 참으신다. 어느 날엔가 막내 동생과 술을 마신 채 늦게 귀가해서, 어머님은 바닥에 앉은 채, 나는 소파에 누운 채 몇 마디를 나누었다. 그러다 맨홀에 빠지듯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보니 어머님은 그대로 딱딱한 방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어계셨다. 그런 어머님이 한밤인 1시30분에 문자를 보내신 것이다.
‘무슨 일인데요?’
‘말이 탈출해서 사고가 났다는데 혹시….’
‘말 사고요?’
나는 재빨리 인터넷을 뒤져 전라도 무안에서 말이 승마장을 탈출해 택시와 정면충돌했다는 뉴스를 발견한다.
‘아니에요. 전라도 무안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아, 그렇구나…. 말들이 말썽이네. 어서 자거라….’
난 문득 깨닫는다. 내 승마 사업이 우여곡절(迂餘曲折), 구절양장(九折羊腸)을 지나며 어느 정도 성장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노심초사 마음 졸이신 어머님의 음덕(陰德)이로구나. 내가 잘나서, 내 노력이 아니라, 여전히 이른 새벽 장독대에 정화수(井華水) 떠놓고 손바닥이 뜨거워지도록 빌고 또 비는, 늙으신 어머님 덕분이로구나. 삶의 진리를 또 하나 깨닫고 기쁜 마음이 든다. 그러다, 노트북 자판에 툭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를 발견한다. 뭐지? 그리고 연이어 물방울들이 자판에 떨어진다. 나는 혼자 미소 지으며 의자를 젖혀 더 이상 자판이 젖지 않도록 한다. 50이 넘은 나는 여전히 엄마의 어린 아이다. 나는 그동안 그분의 속을 얼마나 썩인 것인가. 나야 말로 진짜 말썽쟁이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말을 돌보는 일이 나의 업(業)이 된 것인가. 모두가 잠든 새벽, 중년 남자는 어깨를 떨며 소리 낮추어 오열한다.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 훈련대장 allbaro1@naver.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56호(12월19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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