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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선사한 마지막 수업

최길시 2021. 9. 29. 14:30

 

글쓴이 한광석 [홈페이지] 2006-02-15 22:50:45, 조회 : 1,927

이 땅에 선사한 마지막 수업

2006년 2월 11일 토요일 오전 10시 분당 중학교 시청각실! 이것은 우리 교육사에 새로운 인식과 변화를 태동시킨 역사적인 수업이 이루어진 시간과 장소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2월 9일(목)자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바대로 나의 은사이신 분당중학교 최길시 교장 선생님께선 44년 11개월의 교직생활을 마치며 의례적인 정년퇴임식을 하는 대신 초등학교 교사시절과 고등학교 교사시절에 가르친 제자들을 당신의 홈페이지(kilshi.net)에 선착순으로 60명을 받아 출석부와 이름표를 준비하고 두 시간에 걸친 수업으로 17살 때부터 시작한 장구한 교직생활을 새롭고 의미 있게 마감한 것이다.

이 땅에 사제지간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관계야 수없이 있어 왔지만 이렇게 정년퇴임을 맞아 제자들과 마지막 수업을 하는 것으로 정년퇴임을 대신한 것은 우리 교육사에 초유의 일이며 앞으로도 있기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과 언론이 정년퇴임식을 대신한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 이 사회에 모처럼의 신선함을 안겨 주었다며 그 감동의 수업을 마련한 선생님과 그 수업에 35년 전과 다름없이 출석한 기특한 어른 학생들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내며 이를 계기로 이러한 퇴임의 마지막 수업이 곳곳에서 이어져 새로운 문화로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많은 교사들이 나의 은사님처럼 감동적인 마지막 수업으로 정년을 마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 개인과 우리사회의 축복이요 우리 문화의 건강함이 담보되는 사회적인 은총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마지막 수업이 하나의 과시적이고 형식적인 모방으로 이어지면 이 사회에 또 하나의 업을 짓는 불행이 될 수도 있기에 우리는 그 마지막 수업이 지니는 의미를 보다 깊이 성찰하여 그러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은 하되 섣불리 흉내 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마지막 수업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필수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제일 먼저 나의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했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긴 제자들 앞에서 의미의 장을 여는 수업을 하기 위해선 수업 내용 이전에 그들의 존경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러한 존경은 바로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그들의 가슴속에 그리움으로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수업은 스승과 제자가 예의상 만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달래며 잠시 추억 속으로 떠나는 그들만의 단순한 패키지 수학여행이 될 뿐이다.

그 다음 필요한 것은 그 마지막 수업을 하기까지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삶의 궤적이 보여주는 성실함과 치열함이 제자들이 살아온 삶의 자세와 태도를 능가해 왔어야 한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는 동안 나름대로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힘을 축적해 이 사회를 리드해 가는 중추적인 주역들이 된 제자들 앞에서 스승의 마지막 수업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의미를 창출하기 위해선 35년 전과 동일한 선생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이 살아 있어야 하고 그러한 권위는 그가 살아온 삶의 과정 속에서 성실히 축적해온 도덕적인 힘을 통해서만 발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승의 몸에서 발하는 권위와 도덕적인 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듣는 수업일 때만 제자들은 다시금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반추하고 보다 한 차원 높은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한 건강한 에너지를 공급받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승이 ‘지천명’이 넘은 제자들에게 감사와 갈채를 받는 수업을 해 줄 수 있으려면 삶의 완성에서 피어나는 심미적인 멋이 있어야 한다. 즉, 나름대로의 예술적인 세계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을 세 단계로 구분할 때 첫 단계인 삶의 시작은 노래로 시작되고(興於詩), 두 번째 단계는 예(禮)를 통해 사회에 자리 잡고 서는 것이고(立於禮), 마지막 삶의 완성은 심미적인 락(樂)에 의해 이루어진다(成於樂). 따라서 우리가 초등과 중등시절에 학교에 다닌 것은 선생님으로부터 사회에 우뚝 서기 위해 사회적인 예를 배우러 간 것이고 예의 단계를 지나 이제 사회의 중역으로서 다시 선생님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것은 스승님의 삶의 완성이 과시하는 락의 세계를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삶의 달관에서 오는 시적이고 음악적인 멋이 없으면 그 수업은 엄청나게 변화한 제자들에게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예의 수업이 될 수밖에 없어 이럴 경우 차라리 사회적인 예로 이루어지는 의례적인 정년퇴임식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다.

확언컨대, 나의 은사이신 최길시 선생님은 불가능에 가까운 이 세 가지 필요조건을 온전히 충족시켰고 그러기에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보다 훨씬 의미 있고 감동적인 마지막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수업을 할 자격이 어떠한 경로로든 인정되었기에 그의 수업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실 난 최길시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배운 바는 없다. 초등학교 당시 난 6학년 4반이었고 선생님은 6학년 2반 담임이셨기에 수업을 받은 적은 없으나 어린 마음에도 가르침의 엄격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몸서리쳐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집요한 모습이 존경스러웠고, 자기발전을 위한 초인적인 노력은 가난의 극치를 달리는 강원도 어촌의 한 초등학교 교사에서 강원도 명문고인 강릉 고등학교 교사로, 그리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언어문화학 박사로, 그리고는 대한민국에 소위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분당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분당중학교의 교장에 이르는 그야말로 최선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 왔다. 선생님은 그 날 수업 중에 말씀 하시기를 “나는 후회 없이 가르쳐 보았고, 후회 없이 공부도 해 보았고, 지금껏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기에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노라”고. 이러한 후회 없는 여정의 결실인 그 마지막 수업은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삶 자체가 그에게 씌워준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최상의 왕관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은혜로운 기쁨이다.

나를 포함해 그 수업에 참석했던 제자들은 인간으로 태어나 훌륭한 스승을 두고 산다는 것이 어느 정도 큰 축복인지를 실감하면서 이 땅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수업을 듣는 영광을 누렸다. 두 시간의 수업을 위해 무려 30장에 이르는 학습안을 준비해 오셨고 담백하고 격의 없는 언어에는 선생님 특유의 올곧음과 위트가 배어 있었다. “나”라는 대 주제를 여섯 개의 소 주제들로 나누어 진행한 그의 수업은 한 편의 드라마요 예술적인 작품이었다. 내가 이 수업을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여는 수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내용도 중요했지만 이 수업 중간에 선생님께서 1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섹스폰을 연주해 들려주신 것과 다 같이 합창으로 노래하며 수업의 대미를 장식한 것에 근거한다. 선생님은 이 시대의 교육은 개념에서 감성으로 근원적인 전환이 있어야 하고 이제는 교육이 진과 선에서 미의 강조로 바뀌어야 함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선도하는 중역들인 제자들에게 시대적 당위로 요청되는 감성과 미를, 즉 앞서 말한 삶의 완성인 락의 세계를 일깨우고 심어주시고자 하는 깊은 배려를 하셨던 것이다. 한 사회를 이끌어 갈 리더들에겐 음악적인 감성이 있어야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자는 음의 조화로움을 즐기는 것이고 이러한 조화에 대한 감각은 바로 사회적 조화를 창출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음악적인 감각이 없는 리더는 사회적인 갈등과 불화의 골만 심화시킬 뿐이다.

오늘날의 학교 수업에는 심미적인 멋과 즐거움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업이 생명력을 발한다. 섹스폰을 연주하며 락의 세계를 펼치는 선생님은 멋이 있다. 멋이 있는 선생에게는 학생들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촉발된다. 이제 겨우 1년 밖에 안 된 섹스폰의 경력으로 머리가 희끗한 제자들을 위한 수업 중간에 연주를 한다는 행위는 단순히 마지막 수업 레퍼토리의 다양성과 악기실력의 과시가 아니라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자하는 학생들의 지적인 욕구는 선생님으로부터 받고자 하는 심미적인 욕구가 채워지고 나서야 발동된다는 점을 선생님은 알고 계셨고 이 진리의 메시지를 우리를 통해 사회에 전하고자 몸소 실천하시고 있었던 것이다. 천하 없이 실력 있는 선생이더라도 멋없고 보기 싫은 선생이면 학생들은 그 선생으로부터 받는 감동이 없기에 배우기 싫어함은 물론 그 선생의 과목까지 혐오하게 된다. 그러기에 선생이 최고로 잘 가르치기 위한 선결과제는 선생이 선생다운 멋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이 멋이 있으면 학생은 그 선생의 과목을 좋아하게 되고 열심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은사님은 이 시대의 선생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은 심미적인 멋이요 진정한 선생은 교육의 방편을 동원하는데 자유로워야 함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머지않아 은사님의 섹스폰 실력이 비상할 것이고 그날 수업에 참여 했던 제자들은 후원회가 되어 선생님 정기 독주회를 마련하여 깊어가는 락의 세계를 이 사회가 다 함께 나누어 즐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알고 보면, 그날 수업에 참여했던 제자들은 이 땅의 교육에 한 획을 긋는 역사의 현장에 주역들이었던 셈이며 마지막 수업의 영광스러운 동창생들로서 그 기념비적인 수업의 의미와 의의를 우리의 삶 속에 건강하게 확대해 가야 할 것이다. 선생님의 만수무강을 기원 드리며, 동창생 모두 역시 선생님께서 “건강 하라”고 하신 당부 말씀을 삶의 첫째 계명으로 알고 추호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제가 "셰익스피어와 함께하는 세상"(www.shakespeare.co.kr)에 실은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