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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강종대 군에게'

최길시 2021. 10. 28. 06:30
글쓴이 kilshi [홈페이지] 2015-05-26 23:59:03, 조회 : 766

 

 

2007년 5월 14일 스승이 날 여기 416번에 올라온 이름 밝히지 않은 제자의 글 8년만에 드디어 본인이 나타났다네. 강릉상고 35기 3학년 6반 강종대군

 

몇 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제 이름은 뭐고, 어느 학교 몇 년도 졸업생이라는 것을 밝혀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우연히 스승님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다가, 어느 제자의 글을 보시고 얼굴을 떠올리시는 선생님의 댓글을 읽어본 적이 있기에, 저야 물론 반가운 마음이지만 제자를 몰라보실 수 있는 선생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지난주는 먼저 선생님의 “행복을 얻은 공부 이야기”를 인터넷 주문을 하고 오늘 오전에 배달 받아 든 순간 설렘으로 짬을 내어 선생님의 추억과 양식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가르치심에 유명한 소설가나 기타 문학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스승님이라고 동기들이나 아니면 사회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야기 한 적이 많습니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저는 진정 꽃 한 송이를 꽂아 드리고 싶은 선생님이 누구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샘”은 초. 중. 고등학교 때의 담임선생님이 아닌 정성과 열정으로 가르쳐주신 최길시 선생님이 생각나곤 하였습니다.

엊그제도 동창 두 녀석과 소주 한잔 하면서 우연히 고교시절의 얘기를 하다 선생님 얘기를 하였습니다. 내 진정 존경하는 선생님은 최길시 선생님이라고, 물론 선생님은 저의 얼굴도 모르실 거고 선생님께서 기억하실 정도의 성적도 또한 말썽도 피우지 않고 물론 교무실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없으니까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지만 용서해 주시고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충심으로 기원하옵니다.

2007년 5월 14일

(2006년 5월에 쓴 글을 이제야 올립니다.)

강릉상업고등학교 제자 올림

 

강종대 군에게

그러니까 8년만에 보내는 답장이 되었네.

어려서부터 편지쓰기를 싫어하지 않았고(내 기억에 남아있는 최초의 편지는 6.25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으니 국민학교 4,5학년 때였을 것이고, 일부러 모은 것이 아니고 서랍 여기저기 구석에 쳐박혀 버려지지 않아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도 수백 통이나 되니), 내가 보낸 편지에 답이 없으면 섭섭했던 내 심정을 헤아려, 받은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은 기억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내 평생에 이렇게 늦은 답장을 보내게 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지.

자네가 해규에게 보낸 카톡으로, 2007년 내 홈피에 무명으로 글 올린 사람이‘강종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기분이 벙벙하다고 할까 참 묘했네. 의문이 풀려서‘아~’하고 시원하긴 한데, 자네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름조차도 아무 것도 기억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네. 그래서 집에 오자말자 화장실을 참고 앨범부터 뒤졌지. 그러면서 자네가 몇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거기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내가 그러리라고 정확히 예상하고 나를 덜 안타깝게 하려는 배려에서 그랬다는 것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더군.

그런데 그 카톡에 “제가 국어는 수가 아닌데 작문 점수는 아마 우리반에서 제일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이유는 국어점수와 연계하지 않고 일일이 작문 시험지를 다 읽어 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라는 글을 읽고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면서 조금은 서운했네. ㅎㅎㅎ…… 아니, 작문점수를 국어점수와 연계하리라고 생각했다니…, 그것 때문에 나를 존경했다니…. 자네가‘수’를 받은 건 순전히 자네의 중간, 기말 성적이 좋아서 받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말이야,‘선생님이 나를 특별히 이뻐해서 나에게 ’수‘를 준 모양이구나’하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내가 당황했을까?

작문시험은 다른 시험과 달리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채점자의 주관이나 기분이 작용할 수 있는 것이어서(물론 채점 기준이야 있지만), 채점할 때 언제나 조심스러웠지. 특히 재적의 5%에게만 주는 ‘수’와 ‘가’가 되는 글들은 한 번 더 읽어서 확인하게 되더라고. 이름은 채점이 끝난 후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자네 이름을 보고. ‘별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글은 잘 쓰는데?’하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나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 되었고, 그‘수’가 자네가 살아오는 동안에 용기와 활력의 근원이 되었다면 그건 정말 내가 잘한 일로 치부해도 좋을 것 같네(물론 자네의 실력이었지만). ㅎㅎㅎ……

자네가 감추려던 이름이 뒤늦게나마 우연히 들통나 버렸고, 나는 잠시라도 궁금했던 의문이 풀렸으니, 지난 번 문자로 보냈던 것처럼 한 번 만나 회포를 풀어야 하지 않겠나? 술은 내가 사야 하겠지.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오늘의 자네를 만들어 준, 그 옛날의 초심을 잊지 않는다면 적어도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살 것으로 생각하네, 늘 자신의 인생과 삶을 반추하며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잊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하루하루가 헛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네.

앞으로는 매년 '스승의 날'이 오면 이 글을 회상하며 마음의 꽃 한 송이를 받아들고 기뻐하겠네. 고맙네.

가장 편한 시간에 연락 주게. 나는 아무 때나 편하니까.

 

2015년 5월 30일

최 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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