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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길시 2021. 10. 27. 12:19
글쓴이 kilshi [홈페이지] 2014-08-23 09:55:09, 조회 : 672

 

 

궁금하였다. 누구가, 어떤 힘이, 어떤 이야기이기에 그로 하여금, 죽기보다도 함들다는 항암치료의 고통을 이겨내며,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는 작업에 절대적인 오른 손 중지의 빠진 손톱에 고무 골무를 끼면서까지, 정확히 두 달만에 이 장편소설을 쓰게 하였는가? 작가 스스로도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적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경외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고 할 만큼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어렴풋이나마 이 작품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임을 알았을 법한데도, '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 주신다면 나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이후의 '제2기의 문학'에서 '제3기의 문학'으로, 이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고 한다'고 한 것을 보면 하느님이 더 허락하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한 구절, '암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과 내가 보는 모든 사물과 내가 듣는 모든 소리와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과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하느님과 진리라고 생각해왔던 모든 학문이 실은 거짓이며, 겉으로 꾸미는 의상이며, 우상이며, 성 바오로의 말처럼 사라져가는 환상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헛꽃(幻花)임을 깨쳐주었다.'

 

내가 소설을 잘 읽지 않기는 하지만, 근래 읽은 소설 중에서는 가장 신중하게 생각해 가며 읽었다. 그것은 이걸 쓰지 않으면 안 되었을 그 무엇을 찾아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럴 만한 그 무엇을 발견해내지 못하고 말았다. 내가 소설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엄청난 산고를 치르며 낳았어야 할 만큼의 가치는 있어 보이지 않았다.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간에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면, 그가 그 힘들다는 암의 고통을 감내하며 고행하듯 이 소설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원고지 십자가 위에 못박혀 고행을 견디고 이겨낸다면 예수가 부활하듯 자신도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려고 했을까? 그리하여 부활한다면 책 머리의 ‘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이 작품을 시작으로 ‘제3의 문학’을 야심차게 새로 실현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에 가서, ‘암’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이 환상이며 헛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고 자인하고 만다.

결국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의 치열한 작가의식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 작가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던 책임을 마지막 한 순간까지 알뜰히 다하고, 『눈물』원고지 위에 두 팔과 다리를 묶고 눈을 감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