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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최인호 유고집)

최길시 2021. 10. 27. 12:14
글쓴이 kilshi [홈페이지] 2014-08-19 12:46:42, 조회 : 755

 

 

눈물』(최인호 유고집)

눈물을 읽기 시작했다. 글 잘쓰기로 유명한 그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이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으로 신춘문예에 당선한 대단한 소설가, 평생을 두고 그 많은 작품을 토해 내고도 아직 남은 것이 있어, 쏟아내지 않고는 숨을 거둘 수가 없어 죽기보다 힘들다는 말기암의 고통을 참으며 쓰고자 했던 얘기는 무엇이었을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철 든 이후에 가장 순수하고 진실해질 때가 죽음을 면전에 둔 그 때가 아닐까? 떠나는 그 마음에 가식이 있을 리 없는 진솔함을, 표현에 궁색함이나 어색함이 없이 써내려갔을 것이기에 이 소중한 시간을 죽여가며 읽을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첫 장을 여니, ‘주님의 발을 제 눈물로 적시고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드릴 수만 있다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릅니다. …… 이렇게 글을 쓰면서 이렇게만 머물러 있을 수만 있다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이렇게 힘겹고 애절하고 원통하여 떠나기 힘들다는 것인가? 산다는 일이, 죽어간다는 일이 너무 처절하여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아려 왔다. 한 마디 한 구절이 눈물이요 호소요 절규였다. 그의 말대로, 그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져 가는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드러나 보였다. 읽기를 중단할 수도 없고…….

오직 하느님과 주님만 바라보며 애절히 애절히 간구(懇求)하고, 매달리는 모습이 처절하다 못해 애처롭다. 그러면 나처럼 종교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누구에 매달려야 하는가?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차라리 매달릴 데 없어 허허롭지만 자유롭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말마다 주님의 뜻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항변하는 것 같았고, 아직 못다 쓴 것들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제발 더 쓸 수 있도록 다시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 또 기도하고, 애원 또 애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고통을 견디다 견디다 결국,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 모두를 끊고 원고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빠진 손톱의 통증 때문에 고무골무를 손가락에 끼우고, 빠진 발톱에는 테이프를 칭칭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조각을 씹어가며 미친듯이 글을 쓴다. 그 마지막 소설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그리고 눈 감기 직전까지 쓴 것이 이 『눈물』이었던 모양이다.(이것 읽기가 끝나고 그래도 마음에 빈터가 있으면 잘 읽지 않는 소설이지만 그것도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목숨이 한계에 다다른 말기암 환자로서, 참기 어려운 그 고통을 견디며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소설가로 죽고 싶다는 그의 철저한 책임의식과, 뒤늦게 가톨릭에 귀의하여 주님에의 의리를 끝까지 다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벗이여’라는 제목으로 온통 주님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머리에 남아있는 지식의 최후의 한 조각까지도 다 긁어내고, 가슴에 남아있는 작은 사랑의 체온까지도 모두 소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듯 보인다. 이글을 다 쓰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는 결코 숨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월, 나는 덕수궁에서 열린 ‘한국근현대화 100선’에서 아주 커다란 한 그림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김환기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도대체 저 그림이 뭔가? 알 것도 같으면서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점으로만 그 큰 화면을 가득 메운 점묘화. 그런데 이 책에서, 그 그림은 그의 오랜 친구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읽고 태어난 그의 말년의 대표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저녁에 - 김광섭 -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 수많은 점 위 가운데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런 구절이 있었다. ‘우리들의 생각이 우리들의 행동을 낳으며, 행동이 습관을 낳으며 습관이 성격을 낳으며 성격이 운명을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바뀌려면 생각부터 바꾸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건 성경에 나오는 말씀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으니까- 그런 걸 알면서도 우리는 한 줌도 안 되는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 반도 채 읽지 못했지만, 한참씩 책을 덮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지 않으면 안 되어, 다 읽기까지는 며칠이나 걸릴지, 느낌이나 감동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잘 모르겠다. 잠깐 뒤쪽을 들쳐보니, ‘나의 동무여’ 라는 이해인 수녀님께 쓴 편지인 듯한 글이 있고,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이라는 2013년 9월 28일 아침, 정진석 추기경의 추모 미사 글이, 그 다음엔 지인들의 ‘조사(弔辭)’, 그리고 마지막에는 ‘할아버지께’라는 손녀의 글이 실려 있다.

가톨릭 신자라면, 아니 삶과 죽음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오늘도 해가 지고 또 하루가 저문다. 지금도 이 땅 어느 구석에서는 이승의 숨을 거두고 떠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8월 22일 지금도, 소설을 읽는 일이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침샘암 수술을 받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 힘들다는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으며 한편으론 주님의 발을 눈물로 씻을 만큼 정성으로 기도를 드렸지만 암이 폐로 전이되어 전신 항암 치료를 1년 반. 치료 중단의 결단을 내리고, 손톱 빠진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두 달 만에 탈고해 냈다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지 않고서는 궁금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마침 도서관에 그 책이 대출되지 않고 서가에 빳빳이 꽂혀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