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기 [홈페이지] | 2011-10-31 17:08:05, 조회 : 1,009 |
[뉴시스아이즈]칼럼 '김명기의 목장통신'-시정마(始情馬) 이야기
기사등록 일시 [2011-10-31 11:57:05]
금주부터 뉴시스아이스에 목장통신이라는 제호로 컬럼을 씁니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11031_0009610349&cID=11210&pID=11200
【서울=뉴시스】말은 예로부터 남성성의 상징이며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왕의 탄생을 알리는 등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영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완벽한 수컷들의 세계에도 숨겨진 이야기는 있다. ‘시정마(始情馬)’라고 혹 들어보셨는지.
말들은 완벽한 혈통체계의 족보를 가지고 있다. 조부나 아비가 잘 달리는 말이면, 그 특성을 자손들도 그대로 이어받는다는 경험칙 상의 오랜 신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말이 달리는 것을 보지도 않고, 그 조상의 혈통만으로 망아지 가격을 결정한다. 우승을 많이 한 경주마 같은 경우 말의 몸값이 수십, 수백억원을 호가하고, 그 망아지는 수억원의 가격이 매겨진다. (실제로 ‘스마티 존스’라는 종마는 약 500억원을 호가한다.)
충분히 상금을 받고 능력을 입증한 말들은, 은퇴 후 편안한 마생(馬生)이 보장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싱싱한 암말들과 계속해서 신방을 차리며 노후를 즐기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그러나 말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확고한 야성의 세계다. 그들의 대화는 물고, 차고, 내달리는 것이다. 그런 식의 거친 대화가 끝난 연후에 서로 목을 비비며, 애무하고, 사랑에 빠진다.
몇 년 전, 필자가 지도하는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의 대학생들을 대동하고, 종마목장을 견학한 일이 있다. 약 30명의 대학생 가운데 남학생은 겨우 5명. 승마는 의외로 여인들에게 있어서 ‘부드럽고 우아한 세계’다. 종마목장에서는 대학생들이 단체로 견학 온다고 하니, 회의실에서 영상 자료로 교육을 해주는 등 정성을 다해주었다. 실내 교육을 마치고 인도해 주는 곳으로 따라가 보니, 헛! 바로 종부소(말들이 안전하게 교배하도록 만들어진 장소)였다.
수의사분들은 친절하게 설명까지 곁들여 가면서 번식용 암말인 종빈마(種牝馬·Brood mare)의 생식기를 진지하고 꼼꼼하게 닦는다. 여러 명의 수의사 분들은 늘 하는 업무이겠지만, 꽃다운 여대생들을 몰고 견학을 간 나는 영 부끄럽고 좌불안석이다. 물론 여기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요소는 전혀 없다. 말이라는 가축을 교배하고 증식하는 냉정하고 학술적인 시범교육인 것이다. 마침내 건장한 종마 스탤리온(stallion)이 나타나고, 우리가 상상하는 바로 그 엄청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중년 아저씨인 나는 눈을 둘 데가 없는데, 오히려 여대생들은 눈빛까지 초롱초롱 진지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말의 생식 장면은 싱겁기 짝이 없다. 스탤리온이 앞발을 번쩍 들고 암말에 올라간 지 한 5~10초나 될까. 숫말이 암말의 등에서 내려오면 그걸로 끝이다. 곳곳에서 여대생들의 탄성이 들여온다. “에이~.”
“에이? 아니 이 녀석들이! 뭘 안다고!” 종부소에 근무하는 수의사들이 워낙 냉철하고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줘서 그런지, 말들의 사랑 장면은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고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아마 이글을 읽는 분들의 입에서도, “에이~”하는 탄식이 흘러나올 것 같다.
자연에서 말은 육식성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식재료의 역할이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 맹수들이 달려들지 알 수 없다. 망아지는 태어난 지 20~30분 만에 벌떡 일어서서 비틀 비틀 돌아다닌다. 살려면 그래야만 한다. 먹고 먹히는 야생에서 느긋하게 생식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혜택인 것이다. 인위적으로 안전하게 보호되는 환경에서도 말들의 야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만약 종빈마로 결정된 암말이 충분히 발정하지 않았다면, 암말은 수말을 거부하고 발로 차버린다. 물질만능 인간세상에서야 스포츠 스타나 재벌을 거부하는 여인이 있을지 모르지만, 말들은 ‘제깟 녀석이!’ 하고 간단히 몸 값 비싼 종마를 차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만약 수십억짜리 스탤리온이 다리라도 부러지거나 혹은 사망하게 되면 손해가 막심하다. 이를 대비해 등장시키는 것이 시정마다. 시정마도 역시 잘 생기고 늠름한 건장한 수말이다. 그래야 암말이 반하고 흥분하지 않겠는가.
이 시정마가 종빈마 곁으로 다가가서 슬슬 목덜미를 애무하고, 암말이 제대로 흥분했는지 확인한다. 종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암말의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종빈마에게 채이거나 부상을 입을 위험은 당연히 시정마의 몫이다. 죽어도 어쩔 수 없다. 충분히 전희를 한 결과, 암말이 정말 임신할 시기여서 제대로 흥분하고, 수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마지막 삽입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시정마는 갑자기 끌려 나간다. 말 그대로 ‘찢어지는 괴로움’의 비명을 지르며! 그 순간, 진짜 정자를 제공할 종마가 발걸음도 가볍게, 나는 듯 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합방!
시정마는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인정 많은 마주는 가끔 적당한 암말을 골라 시정마에게 합방시켜 주기도 한단다. 하지만 말의 임신기간은 정상적으로 320~360일에 이르기 때문에, 목장 주들이 가능성 없는 말을 그냥 먹이기만 하는 무의미한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다. 오늘도 시정마는 고독한 독방에서 울부짖는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승마를 지도한다. 여러 사람들이 있다 보니, “어제 나이트에서…” 혹은 “어제 클럽에서…” 어쩌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바보들도 있다. 나는 마음속에서 한 단어가 떠오른다. ‘이 시정마 같은 녀석….’
진짜 남자는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되어 한 여자를 당당히 책임지는 사내다. 그전까지는 누가 뭐래도 애송이다. 결혼해 단란한 가정도 꾸미지 못한 주제에 무슨 실적이라도 쌓듯이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바보는, 결국 제 돈 내고 아까운 시간을 써가며 여자들이 좋은 남편감을 찾도록, 시정(始情)하고 다니는 것이다. 멍청이들이 헛짓을 하든 말든, 현명한 여인은 찢어지는 괴로움의 비명을 지르는 시정마 따위는 쓰고 난 티슈처럼 버린다. 그녀들은 찬찬히 제대로 된 종마를 골라 눈물 속에 미소 지으며, 마침내 화려한 웨딩마치를 울릴 것이다.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 훈련대장 allbaro1@naver.com
※알립니다=이번 호(제250호)부터 말 전문가인 김명기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 훈련대장이 집필하는 ‘목장통신’이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애독 바랍니다.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50호(11월7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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