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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

최길시 2021. 10. 18. 07:33
글쓴이 김명기 [홈페이지] 2011-01-23 06:50:18, 조회 : 990

 

 

애비

최전무님. 그의 공식 명칭은 그렇다. 그의 사무실은 길거리다. 이제 60대 중반, 그는 ‘마당’ 이라고 불리는 장한평의 거리에서, 사무실 한 칸 없이 중고차 거래업자로 평생을 살았다. 직원 한 명 없는 최전무님이지만, 나는 차량으로 인한 문제꺼리나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지금도 늘 최전무님을 찾는다. 그는 장한평의 터주대감이다.

오늘 점심은 제가 살게요.
그렇까?

그의 음성은 낮고 굵다. 그는 차가운 거리를 돌며 번 돈으로 아이들을 키웠고, 가정을 꾸렸고, 나이 들었다. 두 걸음 걸을 때마다 인사를 받는 그와 함께 다니면 이 바닥에서 해결하지 못할 일은 거의 없다. 그는 장한평 광주등심의 맛난 삼겹살 불백을 한입 가득 물고 밥풀을 튀며 내게 말한다.

아 그래서 말이야. 우리 큰 아들, 이 짜식이 어려서부터 애가 좀 남달랐어. 애비는 길에서 중고차를 팔아도 애가 머리가 좋아.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지. 무슨 잔고 증명을 한다고 6,500만원이 통장에 있어야 한대잖어. 영국 놈들 보통 지독하지가 않아. 돈이 어딨어? 죽는 줄 알았지. 짜식이 가자마자 3개월 만에 마트에 일자리를 턱 잡더군. 그래서 지 학비를 벌어 썼잖어?
호오 대단하네요.

군대는 해군에 가랬어. 가서 해군본부에 지원하랬지. 해군본부는 아무나 못 가잖어? 빽이 어딨어? 애비가 중고차 팔인데. 그래도 해군 인사과에서 애를 턱 알아보고 큰 컴퓨터 있는데 배치시키더라고, 학교 성적 같은 걸 보고 알아 본 거지. 그것도 3군데서 서로 애를 빼갈라고 난리였어.

그는 다시 고기쌈을 싸서 한 입 가득 입에 문다.

졸업하고 기업에 서류를 냈는데, 3군데서 다 오라고 난리야. 그래도 큰 데가 났다고 L기업으로 가랬지. 갔더니 인사 책임자가 얘를 알아보고, 여기저기서 끌어 가려고 난리인거야. 3군데 중에 골라서 컴퓨터 부서로 갔지. 거기서도 상무님이 얘를 잘보고 나한테 전화를 한 거야. 얘는 내가 알아서 잘 진급시키고 키울테니 절대로 딴 생각하지 못하게 하시라고. 캬아, 그 대기업 상무님이 나 같은 차팔이한테 전화를 해서 말이지.

그는 살짝 엎드리고 눈을 조그맣게 뜬 채, 내게 그 대단한 비밀들을 털어 놓는다. 그와 함께 식사를 하는 1시간 내내 그는 아들 자랑을 멈추지 못한다. 묘하게도 그의 장남은 언제나 3곳에서 그의 재능을 탐낸다. 그의 아들이 다닌다는 L기업과 14년간 거래를 한 나는, 그가 자랑하는 장남의 무용담에 호오, 그렇군요. 대단하네요. 하고 장단을 맞추어 준다. 그와 나는 같은 애비다. 나 역시 아들이 있고, 그와 같은 자랑을 하고 싶다. 모든 것을 3배로 말하는 재주는 내게 없지만, 나는 그의 긍지와 자랑과 사랑을 이해한다.

60넘은 모든 남자의 삶은 하나의 소설이고, 개인의 역사다. 최전무 역시 몇 십 년을 길에서 벌벌 떨며, 더위에 시달리며 그 사랑스러운 아들을 길러냈다. 그는 자랑할 만하다. 평생을 노력한 결과, 그의 보람, 그의 대단한 장남. 왜 자랑 못하겠는가? 나는 그의 자랑을 기꺼이 들어 준다.

나는 아버님이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치시면 늘 하는 푸념을 떠올린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래서 이 자식은 평생 한 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어, 고등학교 때도 S대 안정권이었잖아? 그런데 친구를 잘못만나가지구선... 어찌된 일일까? 나이가 들수록 불효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간다. 아버님은 말씀이 없고, 나이든 자식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오늘도 낡은 자전거 뒤에 투망 그물 하나 싣고, 겨울 바닷가를 휘적휘적 바람에 흔들리실 병든 노인네. 나는 목이 둥그렇게 메어온다.

‘그래 부모님껜 잘하나요?’

나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나? 그 아들이 잘 자라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주면 그만이다. 그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아들이 내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느냐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제 한 몸 행복하고 잘 살아주기를 바란다. 좋은 짝 만나 아이 낳고 잘살아주는 것. 그렇게 마누라가 지어주는 따스한 밥 얻어먹고, 애들 성적 따위로 고민하며 애면글면 살아주면 그것만으로 고마운 일이다.

제 한 몸 꾸리기도 힘든 이 벅찬 세상. 너무 고생하지 않고 평온하게 살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 것인가? 행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든 남자들은 때로 애비라는 말만 입에 올려도 가슴이 벅차고 눈 밑이 뻑뻑해 진다. 나는 최전무의 아들자랑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아야, 이젠 뭐 한시름 놓아도 되시겠어요.

나는 말이야, 국민학교 2학년 댕기다가 중퇴가 다야. 그런데 이 자식은 대학교 3군데를 덜컥 붙었는데 말이지, 핸드폰을 사 달래잖어? 장학금 탔다고, 근데 이넘의 장학금이 말야. 이거빼고 저거빼고 한 삼백 주더만. 그래서...

최전무와 나, 우리는 애비다.


즈문마을에서...